<강원의 화가 최홍원 작>
원주서 최홍원 화백 추모 10주년 전시회가 2022년 1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필자으 앞전 게시글에서는 작품 감상이해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외부에는 작품을 플래카드로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는 바, 집안 동생이 플래카드에 한점인 위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어서 설명을 부탁한다고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기에 아래의 바로 해석의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 위 작품에 대한 감상>
21.12.29 20:14이 그림의 일반인의 쉬운 이해, 감상으로는 근대 산업사회의 발전에 오히려 인간은 거대한 구조의 틀에 갖히게 되는, 즉 문명의 사회에서도 인식하지 못한 인간성의 절박함을 드러내고 있다.
앞전의 최홍원 작가의 평론중에서 렘브란트는 궁정화가로 왕이 다음 연회때 왕과 왕비등의 있는그림을 그려오라고 명하였는데. 왕과 왕비의 인물이 들어가지 않는 풍경화를 제출하였다. 이때까지는 고전주의로 인물이 없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물며, 왕명을 어기고 그림으로 인식되지 않는 그림을 그렸다고 그는 궁정화가에서 쫒겨나 궁핍한 생활을 하지만 이때 다른 화가들이 그 그림 괜찬은데 하고 서로들 인물이 없는 전원을 대상으로하는 풍경화를 그려서 자연주의를 시발하는데, 이러한 당 시대의 인물이 들어가지 않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는 편파적 인식을 타파하는 것으로 지금 현 사회도 우리는 만족하는듯 하지만 후일에서 보면 어떤 인식의 불균형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술은 이러한 시대적 모순을 지적하여 시대를 열어가는 새로운 사조(ism)를 탄생시키듯이, 위 최홍원 작가의 작품은 인식율의 편파적인 괴리에 경종을 울리는 그림이다.
위 작품에서 오른쪽 상단의 도형은 자연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사고를 통해 얻는 2차적 도형으로 여기서는 산업의 발전을 뜻한다. 그리고 중앙에는 원근의 시간성을 가지고 달려오는 구조물의 연속적 도형이 있고 그 아래는 거대한 방벽사이로 숨쉴 공간도 없이 같힌 아파트를 볼 수 있다.
인간의 생활의 3요소중 하나인 주거공간은 인간이 만들은 가공물에 갖히게 되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기에 이른다는 의미의 작품으로, 세로로 확장되는 연속 실선은 그림의 힘을 더해주는 장식선으로서 일반적으로 매너리즘으로 보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속도감. 긴장감등의 감정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이제 이 그림은 누구나 쉽게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발전하는 문명에 인간 스스로가 갖히는 위기라 얘기할 수 있다. 즉 종내에는 인간을 위해 발전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방벽속에 인간이 갖히는, 인간의 소외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작가는 흔한 개념의 그림을 왜 그렸슬까??
작가로서는 이 그림을 그리기에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동 작품에 작가의 메모나 연대 표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의 그림 시대순으로 볼때 말년시대 이전쯤으로 아마도 "88 올림픽이 끝나는 시점에서 그려진 듯 하다.
당 시대는 노태우 공화국 시대로 주택 200만호 건설이 주창되고, 당 시기엔 타일건물들에서 석재 패널로 탈 바꿈화되며 건설이 대량화되는 시기였다
이때 사람들은 내집마련의 꿈에 빠졌고 그것이 이상향이지만, 작가는 동 시기에 이미 인식 저편의 이러한 문제를 예상하고, 고발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당 시대의 인식론에 불균형적 요소란 점을 파악하고 이를 예고하는 것이다.
미술가들은 여러 학문도 밝아야 하고 시대정신을 잘 파악하여 위기의 놓이는 사회현실의, 즉 인식율의 변환을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이는 즉 예술가들은 앞으로의 사회를 예고하는 그림이다.
어쩜, 이것이 예술가의 천재성이다.
본 작품에 대한 이러한 감상의 답을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예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자할때 엄청난 지식이 필요하며 어떠한 인식의 문제에서 철학적 사유의 사고력과 판단력도 요구된다. 그러기에 이 작품에서 보듯 미술인은 작품의 배경지식이나 양식 등 더 나아가 다른 학문분야까지 이해하고 시대적 판단아래 미래를 예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해할 수 없다하는데, 그럼 전글에 게시한 작가의 다른 그림은 어떠한 이해를 하였슬까 궁금합니다만, 최홍원 작가의 후기 작품들에서 새(삼족오와 봉황, 올빼미등)와 서낭단등의 주제로 그린 그림들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를 눈에 보이는 새와 서낭단, 불화로만 보아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관점을 이해하는 감상은 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작가의 모든 작품들은 아직 가시적 현상계를 그린게 아니라 인간에게 내제되는 머리 속 갈등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점으로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의 이해는 일반인으로서는 미학자들의 평론에 의지하여야 하는데, 작가의 그림이 이제 세상에 알려지고 오픈되는 시점이라, 앞으로 시간이 흐르며 많은 평론가들에게 회자되며 규명 되어야 하는바, 지금 바로 일반인들의 이해에는 곤혹스러움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작가가 이야기 하는 주제어들의 이념을 그려 보이지는 못하는 바. 필자는 전 글에서 서낭단, 새, 불화등은 민족의 신앙체로 숭상하지만, 작가는 여러 신앙심으로 표출되기 민족이 갈구하고 염원하던 응집된 민족적 정신세계의 총화인 민족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규명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민족의 혼(民族魂)을 모든 작품에서 구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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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게시글에서 집안에서 생애사를 조명하느냐는 반문에 필자는 그러한 전기작가도 아니고, 그러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다만 그림의 이해를 위해 조금씩 멘트를 했는바 , 서낭단 그림을 그리려 갔는데 주차공간이 없어 포기하고 돌아왔다라는 글은 서낭당도 아뜨리에서 사상상적으로 그린게 아니라 현장 모두를 다니며 현장적으로 그렸다는 구질한 설명대신 실제 일화 한마디로 대신하려 한 것이다.
또한, 필자의 집에 '60년대초 액자의 수채화는 베토벤 음악을 듣고 그렸다 했는데, 작가의 음악론에 대해서 들라크로와의 '색채와 음악'이라는 담론이나 호크니의 "더 큰 첨벙"의 이론등을 어필하기 보다는 필자는 학자가도 아니고 일반인들의 감상에서 단순한 이해로 서술하였다.
작가는 월남하여 6,25 전쟁때 징집에 군대를 갔었다라는 이야기는 특수한 생애사도 아닐테고,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작가가 의도하는 전쟁속에 죽음에서 비롯하여 한 평생 작가의 내면에 흐르는 삶속에 죽음이 존재하는 잔혹한 역사에 대한 성찰의 철학적 요소를 읽어내야 하기에 도입, 인용한 것으로 필자의 글을 잘 읽어 보시고 이러한 점을 양지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아울러 일반인들의 감상을 위한 이해가 다가가도록 작품이 많이 연구되어, 많은 글들이 최홍원 화가의 작품은 민족정신인 한민족의 정체성을 규합하여 민족혼을 나타내고자 하는 작품으로 바르게 이해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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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daum.net/kkks1/1873(강원의 화가) 최홍원 화백 추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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