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 물장수는 똥물을 팔아 먹었다
후세백작 2017.05.25. 00:45
황사는 인재라는 글에 물을 언급하였는데 이어서 곧바로 물에대하여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이조시대에 북청물장수는 한강물을 지게에 지고 10여리 달려가 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면입니다.
조선 후기 시대의 서울엔 각종 오염과 쓰레기가 심해 청게천은 물론 정릉 산골짜기의 물까지 마시기에 적합해지자 한강물을 퍼 날라 팔게 되었다, 구한말 귀한 사진들이라고 인터넷에 떠오르는 청계천에 삘래하는 사진. 세브란스 창립자 선교사 앨런의 부인의 글에 의하면 당시 청계천은 누런 똥물로 빨래하기에도 부적합했다 한다.
지난 난고 김삿갓이란 글에서 이야기한 동대문을 들어서려면 개똥, 소똥, 돼지똥이 한 발짝마다 있어서 똥을 안 밟고 지나가긴 어려운듯. 그 뿐 아니라 주미공사 박** 의 몸에서는 똥내가 나서큰 배로 도미 중 5일간 독방의 박 공사를 매일아침 문안인사 드리려 가는데 가기가 싫었다 한다.
당시 사회는 세수는 안하고 양치질이 없는 문화는 기본이고 몸에서 똥내가 났다하는 외국인들의 기록엔 펄벅의 대지란 소설에 주인공 오란은 왕릉은 시집가기전날 평생에 딱 한번, 세숫대에 물을 받아 목욕하지만, 최소한 주미공사 양반의 독실에 문안인사 드리기가 고민이었다는 똥냄새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변을 보고 휴지로 닦는 문화도 양치질이 없듯 없었고 그냥 말라서 다리로 떨어지면 발목 덴닢 안쪽에 수북히 쌓였던 것이라 본인은 추정한다. 나의 이러한 추정이 거짓말아라 한다면 본인 집안의 먼 인척어른이 치매라 이러길래 어쩌다 찾아오시면 얼릉 도망가기가 일수였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전권공사가 그 정도였다면 백성들도 똥내는 보편적일듯 하다.
이렇게 물이 없지도 않을텐데 이렇게 우리민족은 물을 천시한 듯 하다.하지만 로마제국에서 보듯 공중목욕탕이나 빨래터등 목욕문화와 관계수로등 물을 잘 다스려야 일등 국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한말에 깨끗한 물을 먹자고 김동환의 詩에서처럼 새벽에 지고온 북청물장수의 한강물을 먹는 물로만 사용하고 동네의 우물은 빨래를 하는 물로 천시하지만 기실 북청 물장수의 한강물도 먹을 수 없는 물이라.
사대문안의 인분은 대문밖으로 버리는데 그 중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의 쪽문인 강희문등은 시체등과 인분을 싣고 나가 허허벌판의 왕십리에 버리는 것이다.
구한말 역사에 임오군란의 구식군대는 별기군이라는 신식군대에 밀려 왕십리에 똥파리가 우굴대는 인분 옆에 부대가 있어서 매일 똥냄새에 불만이 가증되었고 지금도 왕십리 똥파리란 이름이 남아있다.
장마가 지면 이곳을 흘러내린 물이 북청 물장수들이 퍼 날르던 동부이촌동 한강물에 영향을 미쳤고 그러기에 안동 김씨들의 양반들이 사먹던 북청 물장수의 물통의 물도 역시 똥물을 마신것이다.
그 후 해방이 되며 서울 동쪽은 광진교쯤에 버드나무 우거진 곳에 버렸다 한다. 그리고 그 아랜 구의 취수원이 있다. 지금은 아마 팔당물 100%일테지만 옛날에 구의 취수원 30% 팔당 물 70% , 그러면 영등포나 당인리 아래서는 한강물 70대 팔당물 30%정도였다.
이렇게 전국민은 우물보다 강물을 먹고 살았는데 이조시대 평균수명은 아마 40살 전후일듯 하다. 그에 원인은 사회에 여러 원인중 당시사회는 하루 두끼만 먹는 사회이고 요일도 없이 휴식도 모른는 사회가 원인이지만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식수이다.
식수가 이러한 환경의 강물이라, 이렇게 오염된 강물이 조선시대인들의 평균수명이 40세이란 수치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줄 것이란 점이다. 아직도 아프리카의 수명이 짧은 것은 요즘 기아의 문제이전에는 물의 수질 탓이란 점이다.
1960년대를 지나며 상수도가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되며 평균수명은 60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인체의 90%는 물이며 물의 순환에 양질의 물이 건강하단 이유이다. 물론 요즘은 일전의 통계에 평균수명이 78세이며 여자가 남자보다 5살 더 많다한다. 이를 두고 여자들은 주방을 관장하여 더 잘먹어 그렇다고 평하겠지만 그보다는 뜨거운 태양아래의 노동이나 힘든일들이 남자들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 더 큰 비중일 것이다.
물론 앞으로는 백세클럽에 모두들 가입될 전망인데 이 수명의 연장은 본인은 의학이라기 보다는 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라 평한적도 있다.컴퓨터에 의한 자기 공명으로 암의 진단과 레이져 시술의 로봇혁명등으로 수명은 늘어나지만 정말 의학적으로 뇌의 활동의 치매등은 아직 정복하지 못했기에 과학적인 수명의 연장은 어쩜 반 이상은 삶을 느끼지 못하는 치매등의 비 인간을 양산하는 경우라 생각키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20년 전에도 월정사 아래의 진부사람들도 상수도에 의존하지 않고 식수는 샘물등을 떠다 먹는다. 진부는 월정사 위에 상수도 수원이라 하늘아래 자연그대로 민간인 주거 통제구역이라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않는 것인데도 그러한 일급수도 팽개쳐야 하는 시대에 살고있다.
그런데 요즘 매년 불거지는 녹조현상의 4대강 개발사업은 이번 정부에서도 현안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이슈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논란은 배제하고 단순의 물의 정화 입장에서만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녹조현상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까하는 문제에 과학보다는 단위 스케일이 커서 난제가 되고 있다.
요즘 말로는 4대강의 녹조는 보의 물을 막는 가두리 공사가 문제이며 수질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를 철거하는 편이 더 비용이 적게든다고 보를 없애자는 여론도 팽배해지고 있다.그러나 이 말은 비과학성의 넌센스 함정을 가진 말이다.
댐으로 물을 막아서 녹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깨끗한 생수라고 바꿔 생각해보면 녹조가 녹조가 있슬까?? 녹조현상의 원인은 N(질소)나 P(인)의 성분이나 생활하수, 축산오수등이 주법으로 뜨거운 물 속에선 녹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녹조의 확산을 막을길이 없어서 댐을 헐어버리자는 대안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의 선택이지만 그건 자연에로의 회귀는 절대 아니고 과학이 두렵고 선진화에 퇴보하는 행위이다.
댐을 철거한다고 녹조가 없어지지만 그 녹조를 만들던 오,폐수나 각종 염기성 원소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노출되어 흐르고 종내는 팔당등지의 취수원에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농사에 있어서 농약을 많이 칠수록 농약의 보호속에 마치 농약이 영양인것처럼 농산물은 잘 자란다. 그 중에 농약중애는 벼에 뿌리는 농약보다 골프장의 단골 농약인 잡초제거재는 1,000배의 독성을 가지고 있다. 넓은 면적의 골프장엔 비가 오면 그 농약들이 씯겨 강으로 유입될텐데, 엄밀히 따지자면 골프장에 농약을 금하고 잡초는손으로 뽑아야 자연적인 방법 아니겠는가?? 이렇게 잘 보호하여야 할 강물에 보호가 안된다고 댐을 무너뜨리고 과거로 회귀한다고 능사는 아닐 것이다.
엇그제 싸이클로 양평까지 가는길엔 초등학교 운동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드나들던 대형 음식점이 팔당상수원에 위치해 팔당 상수원을 훼손한다고 건물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빵까지 간 것이다. 똑같은 형평성으로 본다면 농삿군도 그런 제재를 받아야 않켔는가?? 이렇게 올바르게 모든 농산물이던 각 개인이든 모두 규제조치의 대상이 되어야 강물은 살아날 것이다.
한 나라가 풍요롭고 깨끗한 환경을 지니기엔 치산 치수가 잘 되어있어야 한다.그러기위해 우리나라는 이승만대통령이 산림예방에 벌목을 하는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겠다고 하고, 박통의 산림녹화의 노력으로 과거의 민둥산은 이제 어디를 보아도 손색이 없슬만큼 풍성한 자연을 선물하고 있다.
물의 자원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과거 오늘의 미국을 있게 만든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그에게 몰아닦친 세계공황 앞에서 그는 서슴없이 V,T,A(테네시강 종합 개발 사업)으로 후버댐을 건설하여 물을 보호하였습니다. 당시로선 아무 의미없는 행동같아 보였지만 이후 이 물은 미 중부를 옥토로 만들게 되며 오늘의 강한 미국의 기반을 조성하는, 그래서 물은 한 국가의 중요 자산의 하나가 되었고, 여러나라들은 물의 생성과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물과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에게 닥친 4대강만이 아니라 모든 댐의 녹조화 현상에 이를 대처할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한 것이다. 지난 80년초 캐나다에서 물의 정화 시스템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 총장님의 강연을 몇 번 들었는데, 당시 박사님은 자기 오줌을 정수하여 먹었다 하길래 그거야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하는 것이고 깨끗한 물나두고 별 신경을 쓴다고 비웃던일이라 괜한 공부하셨다는 생각이 이제 우리에게도 닦치는 문제가 되었다.
선진사회는 이미 40년전에 이렇게까지 준비하였는데 우리도 이젠 그러한 각별한 준비를 요하는 것이다. 치수의 문제는 좀 더 까다로워 완성이란 없는 것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되는 것인데 이런 노력이 힘들다고 댐을 헐고 평이하게만 대처한다면 미래의 한국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 하나씩 풀어나가야 되는 것이다. 과제가 엄청나다고 밀어버리면 다음의 계단은 밟고 깨끗한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댐을 헐면 녹조는 방지하지만 녹조가 없는 물이라고 깨끗해 졌다고한다면 그것은 북청물장수의 깨끗하지도 못한 물을 깨끗해졌다고 둔갑하는 현대판 북청 물장수는 아닐까?
그렇게 관리한다면 오히려 수질의 정화가 아닌 혼탁으로 가는 것이고 이는 국민의 깨끗한 물 먹을 욕구를 저버릴것이고 국민건강에도 마이너스 작용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녹조방지가 한시 급하다고, 지금 백점 만들겠다는 생각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점차적으로 하나 하나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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