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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꼬리를 잡아보며...

조선은 엉터리 역사

 

역사를 어느 편에서 볼것인가??

 

 후세백작 2017.09.05 01:20

 

아래의 글 평창군 수항리의 "수다사가 폐사지로 되는 원인"에 대한 의문의 글에서 일전 평창군에서 주관한 "수다사지

활용방안"의 세미나에서 약 열명의 학자들이 각 분야별로 발표, 감수하였건만 폐사지가 되는 원인은 모두 빗겨나갔다.

 

어떤 학자는,,, 수다사는 강릉으로 가는 교통의 길목에서 멀리 벗어나 폐사지가 되지나 않았는지 하는 의문성글에...

그러면 폐사지가 되지 않았는지라는 의문이 역으로 순환성립되어야 하는데.. 또한 당시 강릉으로 가는 도로는

어느 코스인가,,

 

 

역으로 말하면 강릉으로 가는 도로에서 수다사라는 중후한 절이 왜 생겨야 했슬까?? 또한 설악산 신흥사는 속초로

가는 길에서 수다사지보다 더 멀리 있는데 왜 폐사지가 되지 않았는가란 의문을 해보면 이러한 글은 원고료 때우는

허무맹랑한 발상이다.

 

수다사는 과거 정치적으로 폐사지가 되었다는 책을 찾아보는 중이므로 폐사지가 되는 원인은 다음으로 하며,,

 

어제의 글중에 스님들의 정치성의 한 비근한 예로 과거 문정왕후(중종의 계비로 태릉)의 이야기에서 보면,,,그는

자기 아들을 임금시키려 전처 소생의 경종을 죽였다 하며 이로서 그를 악녀라 하는데,,, 또한 그에겐 노비계급의

정난정이 아이디어 맨으로 출세하는데...

 

 

문정은 당시 사회에 악폐인 세금이 중하게 부여되어 사람들은 조세를 피하여 산사의 스님이 되는 사람이 많았기에

문정은 이를 타계키위해 과거제도에 승과를 두어 스님도 과거에 합격하게 만들어 교종에서약10명, 선종에서

20명 정도 배출하였다.

 

 

물론 그는 佛신자로서 조선불교의 양종 대립에 교종의 원찰로 봉선사(광릉내 소재)와 선종에 봉은사(광주,현 삼성동

소재)로 지정해주고 각 종의 주지를 임명하였으며 또한 섭정당시 봉은사 주지 보우스님을 병조판서로 임명하는등

불교계에 혁신을 꾀하였으며 정난정의 등용등 서얼철폐로 누구나 동등한 평등사상을 주창하였다.

이에 사림의 양반들이 볼때엔 양반계층이 와해된다는 점에 이를 악물고 곱씹었던듯 하다.

 

 

섭정 8년 이후 경종이 등극하자 여자가 정치에 주접을 떨었다는듯 보우를 가장 먼 제주로 유배보내서 제주 목사로

하여금 잔꾀를 내어 죽였다. 그리고 문정왕후를 역사에 가장 악녀로 이름새겼다. 이렇게 사림들은 철저한 보복으로

양반계층의 공간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런데 본인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사림들, 양반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잘했는가?? 아마도 그들은 왕 하나 죽인게 아니라 이조 역사 전체를 죽이고도

남을 행동들을 한 것이다. 표전문의 내용은 기본적 대외정책인 북진정책으로 회귀하는 보수적인 대외적인 성향을

띠고있는 것으로 명의 황제 주원장은 자기를 조롱했다고 트집잡아 이를 쓴 정도전을 압송하라 하였다

.

 

물론 정도전이 쓴 글은 아니다.그리고 이성계는 다른 사신들을 몇번 보내지만 모두 죽였고 방원이 가겠다 나서자

이성계는 혹 공민왕처럼 볼모로 잡힐까 울었다 하는데 방원은 돌아왔다. 이 점을 사가들은 어떻게 평하는 본인의

이해로는 정도전을 처치하자는 공모가 오갔슬 것이란 추정이다. 방원은 명에서 돌아와 이직과 술을 대작하고있는

정도전을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인다. 어떤 둔갑설이라도 이것이 본의 아닐까 생각한다.

 

 

방원과 주원장이 의기상통한점의 공모의 밭침은 명을 타도하자는 고려말기의 요동정벌론자들을 청소하고 결국

조선은 명을 섬기는 사대주의를 표방하리란 점이다. 그리고 조공을 밭치고 서인들은 광해군은 서자라 영창대군을

세자책봉까지 명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처럼 조선은 장자계승은 두번뿐이고 세자를 업고나오는 대신들의 나라라

어떻게보면 문정왕후처럼 왕을 죽인것보다 이나라 기득권 양반세력이 나라를 말아먹는 조선은 똥의 나라라 생각한다

 

본인은 우리 역사에 나쁜 위인 두사람에 김유신과 이성계를 꼽는다.

 

김유신은 자력이 않되자 당나라의 힘을 빌어 백제를 침공했다. 이루말해 나당연합군은 짱께를 섬기는 주,종관계의

사대주의의 시작인듯 하다.

 

하나의 예를 보면 임진왜란시 명나라 군대가 왜군을 물리치는 평양전투에서 적병의 목을베는 경쟁이 벌어졌고

이로서 수없는 조선 백성의 목을 베어 후일 총사령관 이여송을 탄핵하는 상소문이 황제에게 올려지기도 하였다 한다.

 

 

명의 원정군 20만 대군이 임란 8년간 조선에 머물며 조선에 끼친 민폐는 많만치 않았고, 명나라 사신이 유성룡과

필담에 왜병은 얼래빗처럼 대충 쓸어가는 약탈을 벌이는데비해 명나라 파병군은 참빗처럼 싹쓸이로 조선백성을

약탈해 간다는 이야기가 맞습니까 하고 사신은 유성룡에게 묻자 류성룡은 명나라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둘러댔다.

 

 

그것은 과장된 소문일 겁니다. 예부터 군사가 주둔하는 곳에는 가시덤불이 난다고 했습니다.'참빗'이라뇨. 천만에

그럴 리가 없소이다. 참새들의 입방앗거리이니 믿지 마십시요."라고 했다하며 명나라군이 군사훈련을 빙자해서

갖가지 민폐를 일으키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선조는 고개를 내젓는다. "금은 괴롭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 중국만

믿을 뿐이다. 중국의 노기를 적발시키는 일이 있게 될까 염려된다

 

 

명나라는 조선 출병에 나서면서 "절대 민폐를 끼치지 마라"는 엄명을 내렸다. '군령 30조'를 공표했다. 그 가운데

'민폐금지조항'을 들여다 보면 민간의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라도 함부로 건드리는 자는 참수한다,선의 부녀자들을

함부로 범하는 자는 참수한다등 30개 조항이 있지만 부녀자 강간은 물론 명군의 약탈이 무서와 곡식과 가재도구는

땅에 묻도 낮에는 산속에 은신하기도 했다 한다.

 

 

과거 고려 왕건의 부대 5,000여명이 신라를 침공시 왕건은 모든 부하에게 쌀 한톨이라도 약탈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사형에 처하겠다고 명령하였고 정말 왕건의 군사들은 이를 잘 지켜서 후일 신라가 천년의 역사를 하직하고 고려에

투항하는,,, 이러한 도의적 군대는 전 세계 역사에 유일할듯 하다.

 

하지만 전장에서 이러한 도덕율을 갖춘 군대는 없다. 그리고 패자들과 약소국의 비애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지금도 우리는 똑 같은 우를 겪는다.

 

뭐니뭐니해도 북한의 핵의 가장 위험성중 하나는 핵 EMP다( 엘렉트로마그네틱 펄스) 이는 막대한 핵 전자 기류이다.

미국이 원폭 실험중에 태평양상의 존스턴 섬 상공 400km상공에서 핵 실험을 하였더니 1,500km떨어진 하와이에서

통신망이 두절되고 각종 전기 회로등이 차단되고 심지어 교통신호도 비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 한다

.

 

핵이 폭발하면 고온의 열섬과 사람도 날려가는 폭풍 그리고 방사능의 피해만 생기는 것으로 알은 과학자들에게 이상

현상이 포착되었던 것인데 이것은 강력한 전자기 펄스(EMP)로 밝혀졌는데 핵 폭발시 강력한 전자기장을 내뿜어

전자장비를 마비시키거나 파괴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엇그제 핵무기의 EMP 활용가능성을 시사 하였는데사드는 40~150km 상공까지의 영역이라면 150km이상의

고도에 쏠때. 또한 사드는 서울까지 방어가 아니라 하는데...만약 서울하늘 150km상공에 핵폭탄을 떨어뜨린다면

대책은 무얼까??

 

 

그리고 또 하나는 경재제재속에 자금 고갈에 생산된 원폭을 IS등지에 판매한다면,,

그러길래 중국과 러시아로 통하는 관문에 경재제재 요원이 상설 주둔하여 이에 단속을 하는 방안은 필요치 않을까??

러시아의 푸틴의 말처럼 북괴는 굶어 죽어도 핵을 않내놓을 것이라면,,,그에 대응책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그건

말 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핵 국가를 주식으로 비유하면 어느 기업 이사회에서 떠드는 사람보고 대 주주왈 재는 주식 얼마샀길래

저래 떠드냐고,,,정말 핵 국가들 사이에 핵 없는 운전사란 점이다. 운전이 잘 될까 하는 점도.

인류사적으로 비핵화도 좋치만 지금 우리는 내 코가 석자 빠지는데 비핵화만 주장할 때일까?? 계속 말로만 해서도

의미가 없다면 가장 효력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마냥 말로만 비핵화 주장 보다는 힘있는 핵 공론화로 나간다먄 중, 소의 입장을 어떨까??

 

여기서 잠시 논제를 달리하여 위에 언급한 이성계를 들춰보기로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성계는 꺼져가는 고려말,,,요동 정벌에서 위화도 회군을 하고 이씨 조선을 창업한 위인이다.

그러나 본인 후세백작은 이성계는 김유신과 같이 우리나라 역사에 탐탁한 인물로는 생각치 않는다.

 

 

고려말 상황과 이성계는 어떠한 인물이었는가에서 당시 고려말기는 무신정권을 이어 내려오는 고려 상황에 원의

영향과 공민왕은 신돈의 대리정치와 국외로는 명나라가 태동하며 고려는 내부의 갈등을 외부로 전환시켜 명의

주원장의 시건방에 맞좀 보여주고 싹을 밟기를 원했다.

 

 

이러한 중국 대륙의 또 하나의 왕조의 소멸과 생성시기에 요동 정벌론은 그곳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빈 공간에 발빠르게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던듯,

옛날 전쟁에 가장 힘든부분은 부식 수령등,,, 아마도 우마차의 바퀴도 만만찮은 부품으로 생각한다면 철기 생산량이

적어 솥도, 그릇도 옹기등...

 

 

그래서 부대 뒷줄엔 요즘 차량수송을 노비등이 담당하여쓸 것이고 요동정벌이 완료되면 어느 정도의 군사는

돌아올것이다,] 이때 노비들이 다시 돌아가도 노비인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도망가서 잔류해서 살게 된다면

그곳역시 우리의 후손들이 번성하는 땅이 될 수 있는 가정이다.

 

 

그러길래 고려말 요동 정벌은 과거 고구려 광개토왕 이후 영토 확장이란 크나큰 사건으로 또한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주의를 하였건만 고려는 명나라가 커지기 전에 싹을 뿌뎌야 우리가 편안하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표전문" 사건에서 명 황제가 정도전에 누명을 씌우고 압송을 요구하자 방원이 대신 명나라로 가서

어떠한 내용이던간에 그는 다시 돌아와 정도전을 축이며 대명 사대로 고려는 자주적인 생각이었다면 조선은

사대주의적 사고로 조선을 존속케 하였던 것은 아닐까??

 

 

만약 요동정벌은 명의 개국애 혼선속에 우리가 만주벌판을 차지할 수있었던, 그리고 또한 고려는 주변국에

앞서나가는 식견의 정치가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의 끝자락이기에 설움보다 오히려 이들을 제압한다는 역동적인 생각은 왜 못하는가??

과거 2차대전이 끝나며 미국은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애치슨 라인이라 떠들며 한국과 대만은 이 라인에서

제외시켰다. 다만 공산세력이 도발하면 스스로 싸우고 이후 지원하겠단 내용이다.

그 똑똑한 루즈벨트는 엄청난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당시 땡크 한 대도 없이 6,25를 당했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은 산악지형이라 땡크가 필요없다는 미 국방

당국자들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북괴의 소련제 T43 전차 200여대를 무엇으로 방어할까?? 우리는무기도 빈약하게

스스로 무엇을 가지고 싸울지도 잘 알면서,,,이러한 말을,,,

 

하지만 낙동강 전선에서 치고 올라올수 있었던 힘은 마케켈리스 부대의 탱크화력 지원이 결정적 요인 아니었던가??

6,25때 미국은 한반도는 대륙의 한 끝자락이라 한반도에서 대륙을 조정하는 하나의 창구로 생각은 못하고 자칫

큰 대륙에 끌려들어간다는 왜소한 생각아니었던가??

그러나 고려는 명의 싹을 밟아 없애려고 했던 자주적인 생각, 이것은 이씨조선의 개국시 명에 달라붙어서 움직이려던

행동과는 차별화된 발상이다

 

 

울 역사에 언제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꼬집긴 힘들다 효종의 불벌정책에 앞서 소헌세자가 장자계승으로

조선의 힘있는 왕이 되어 청과 친화력을 유지했다면 우리의 문호는 좀 더 일찍 개방되고 일본에 뒤지지는 않았슬까?

물론 일본인과 한국인의 일상은 완전 대조적으로 구분되지만,,

(일본과 한국, 무엇이 얼만큼 다른가는 다음편으로,,)

 

 

이제 맨 위의 조선 제일의 악녀라는 태능의 문정왕후(중종의 계비)는 왕을 죽이고 자기 자식을 왕으로 앉히는 독살적인

면은 있지만 조선 후기의 외척세력의 집권과 그시대의 정말 갈곳없는 사회상,,, 만약 의 서얼철폐와 평등사상이

발전되어 전개되었다면 양반의 몰락일지는 모르지만 역사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어느편도아닌 아와 비아사이에서 바라볼수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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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는 왕의 역사라기 보다는 대신들의 역사이고 아와 비아의 사이에 비아의 민중의 역사는 칼 자루 끝이었다.

그러길래 단재 신채호 선생도 자기의지의 삶이 아닌 민중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하는 고민도,,,

 

구한말 양반들의 횡포와 권력은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완전하게 없어졌다, 해방 후에는 노비니 난 양반이요 하는

소리는 전혀 없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자력이 아닌 외세에 굴복해야만 버르장머리가 고쳐지는가 반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