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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꼬리를 잡아보며...

독립문 이야기

12.06.20. 12:48  

몇일전 어느 정치인사가 서대문 독립문앞에서 차기 대권도전의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내가 말하고픈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독립문의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독립문이 일본에대한 우리민족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걸로 알고 있습

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크게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독립문과 독립신문은 일제 강정기에 친일파에 의해서 일본의 비호아래 행하여 진

것입니다.  당시 독립이란 친일파 서재필이 아관파천후 러시아를 꼬득여 중국의 사신이

어오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청국으로 부터의 독립 즉 청으로부터의 해방을위해서

운게 독립문이고 독립협회입니다.
독립협회의 고문격은 서재필이고 초대 회장엔 이완용, 총무엔 이승만이 이었다.

 

12.06.20. 12:56  

서재필은 우리나라의 훈장까지 받은 애국자이고 국립묘지에 이장까지 하였지만 그의 이

력엔 참으로 애국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갑신정변의 배후에도 서재필이 있습니다.
갑신정변은 김옥균등개화 친일파의 노력이었으나 어찌보면 그 배후엔 서재필의 앙심이

리고 있었지요.

서재필은 일본식 신식군대의 장교로 구식군대 장교에 의해 파면당하고 갑신정변을 배후

조정하여 변을 일으키고 자기를 파면한 여섯명을 살해 하였습니다.


이 갑신정변은 왕을 없애고 공화민주제로 하자는 혁명이었습니다만 3일천하로 끝나고

필 가문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이 사약으로 죽고 부인은 독약을 먹고 두살난

아이을 먹어 그 독약성분으로 죽었답니다.

 

 12.06.20. 13:05  

가문이 풍비박산을 하였고 서재필은 미국으로 도망가 필립 제이슨이란 이름으로 미국

시민권 따고 보복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었지요.
그후 미국에서 의사 개업을 하였으나 동양계의사라 그런지 장사가 잘 안되자 일제강점

기에 한국으로 다시 건너와 일제강점기라 갑신정변의 잘못을 면죄받고 친일파로 활약

중 민비시해의 을묘왜변으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하자 서대문쪽이라 그

곳을 지나는곳에 영은문(청국 사신을 알현하는 문)을 헐자고 재의하고 그 자리에 청국

으로부터의 영원한 해방을 위한 독립문을 건립하자고 제안한다.
이 당시 서재필의 이 독립문안은 서양열강들이 조선에서 청국의 힘을 막는 좋은 묘안인

지라....

 

 12.06.20. 13:17  

이런 시각에서 청국을 억제하는 일본의 지지속에 독립문은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서재필은 친일성분이라 독립신문은 러시아를 공격하지요.
아관파천중인 고종은 그를 보다못해 독립신문의 중지를 명령하고 서재필은 다시 미국

으로 도망갑니다.
이때까지 독립협회에서 서재필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 필립제이슨으로 모든 강연등에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그리고 통역으로 행세 하였답니다. 아마 부모를 잃은 그 한이 남

아있는듯 하지요.
그리고 해방이 되자 서재필은 다시 이땅에 들어와 이승만과 대통령 힘겨루기를 하지만

그의 전력으로 이승만에게 지고서 그는 다시 영원히 미국행을 합니다.

그런 서재필이 독립운동가라는 훈장까지 받는 행운도,,,,,

 12.06.20. 13:22  

말은 길어졌습니다만 암튼 독립협회는 우리 민족정기를 수호하기 위한 협회는 아니었

던듯 하고 일본의 주사로 청을 밀어내고 또한 러시아를 배격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듯

합니다.
일단 이 서대문의 독립문은 민족정기 수호가 아니라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목적이

었습니다.

(일전 과거사 정리에 떠들석 하였지만 기실 일제강점기에 일만 추렸지 일제강점기 이

개화기의 친일파들에겐 단죄를 내렸는가?? 또한 을묘왜변에 민비를 시해하고 내무장관

에 유길준이 들어와 그 정리를 하였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는 역사부터 바르게 평가하고 강점기 시대적 구분이 아닌 친일매국노들을 규정하

여야 할 것이다.)

위 정치인은 자기 스스로는 그런 속내를 알련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대권도전의 출사표

를 던지는게 국민은 멍하다는게 어찌보면 우섭기만,,,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건강하고 밝은 정치 이루도록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