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삼방산(三方山)
삼방산은 평창읍의 남쪽을 가로막아 길게 뻗어 흐른 산으로서 평창읍에서는 저 멀리에는 곤색을 띠며 높고 길게 드리우고 있다. 삼방산은 예하 산들처럼 뾰족하지 않고, 마치 인심 좋다는 평창이란 말이 어울리듯 토산으로 부드러움을 가지는 곡선으로 용모가 단정하고 후덕한 자태로 남산을 품으며 뒤에 큰 산으로 짙은 색을 띄며, 언제나 말없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선조때 관동을 유람하던 선비, 창곡 이헌영은“시내 하나를 건너니 물은 푸르고 모래는 수정 같았으며 사람 그림자는 가로로 비끼어 자연스럽게 그림 가운데 있는 것 같다”라고 평창을 예찬하였듯이 평창강을 건너 도돈까지 이르며 이곳의 해맑은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을 신선같이 묘사했듯이, 이러한 자연을 만드는 삼방산은 군자에게도 사람을 감싸주는 아늑한 고향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앞글 제1장에서 논하였던 평창 관아의 풍수론에서 밝혔듯이 평창은 수정산과 삼방산, 장암산의 3개의 산이 서로 맞닿으며 그 속에 수태극으로 감아도는 사천강(평창강)을 만들고 강은 또한 이 산들의 경계를 명확히 해주고 있다. 이러한큰 산세들이 마주하며 많은 지산을 가지기에 평창강은 극한 감입곡류천을 만들며 많은 선상지가 발달한 곳이 평창이다.
◎ 삼방산의 어원 고찰
삼방산의 평면도(구글어스)
삼방산은 위 사진과 같이 위에서 내려보는 평면도로 보면 Y자형산으로 평창에서는 보이는 면은 상리에서 천동리까지는 4km이며, 영월 공기리 쪽에서 보이는 산은 삼방산 갈라지는 공기리를 마차리까지 10km 길이를 가지는 3갈래의 산이다.
삼방산은 과거로부터 영월과 평창을 분리하는 큰 산으로 평창에서는 三方山이라 하며 영월쪽에서는 일부 三芳山이라 한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 지명유래
1) 평창 쪽에서 三方山
높이는 980m이다. 평창읍 남쪽으로 자리잡고 있어 남방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통행인을 검사하기 위해 중요한 교통요지에 두었던 관방(官房)이, 산 아래 졸부마을의 음지말, 양지말, 속개의 세 마을이 있어 삼방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평창읍내에서 보면 마치 태산보다 더 높은산으로 커다란 종 모습의 산으로, 평창읍을 자연 성곽처럼 감싸고 있다.
▪문제 고찰
三方이란 Y자형의 세갈래란 뜻으로 삼방산이라 함은 높이는 980m의 봉을 기점으로 세 갈래의 준령을 가지는 산이다. 아마도 산의 이름에 가장 많은 것은 도돈에도 잇는 옥녀봉은 전국에 260여개 되듯이 삼방산이란 산 이름도 여러개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제주도의 삼방산은 山房山이라고도 하며 그 뜻은 산중에 방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삼방산은 Y자형의 세 갈래의 준령을 가진 산이라는 어원을 가진다. 평창의 삼방산도 이 어원의 범위에 속한다.
그러면 위의 유래에서 음지말, 양지말, 속개에 있어서 삼방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지역을 표시하는 지명이지 방위를 표시하는 용어는 아니다. 그러기에 삼방산이란 지명은 옛부터 산의 지형적 형상을 보고 자연적으로 부르던 지명을 기록함에이지 3개의 지명을 합하여 부른 지명은 아닌 것이다.
2) 영월에서 三芳山
영월 쪽에서는 평창의 유래를 따르지 않는 설도 있는데 芳(꽃 방)자를 쓰기에 옛날에 세 사람의 기생과 한 사람의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이 선비는 여인들에게 한번도 눈을 주지 않았다 등,,, 하는 설화로 구성된다.
▪문제고찰
영월쪽 유래에서 이 선비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뚜렸한 목적이 없어 설화적 가치 이전에 이 三芳의 유래는 설화적 요소를 가진다.
그러나 이로서 보면 삼방산에는 지형적 특이함이나 역사적 사건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다. 삼방산 자락엔 종부리, 천동리, 공기리, 율치리로 면적 비례로는 작은 마을뿐이었다. 아마 이 지역에는 양반도 없었던 자연부락이기에 서두에서 이야기한 바 삼방산은 늘 곤색을 띄며 멀리에서 거기에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결론은 삼방산은 Y자형 세 갈래의 산으로 동으로는 이곡, 노산에서 서쪽으로는 천동리 그리고 남쪽으로는 미탄면 율치리, 영월군 북면 공기리를 지나 마차리까지 준령이 내려가는 자연적인 그대로의 산이다.
◎ 평창읍 지형 고찰
역사를 하기에 조선시대에 왜 수정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가의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당시 사람들이 생각과 관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수로 밝혀야 하기에 필자는 동 책의 여러부분에서 풍수적 견해는 이 시대에 풍수예찬이 아니라 당 역사를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부연 설명하였다.
평창의 지형적 고찰로는 백두대간 오대산 서대에서 발원하는 차령산맥의 여러 준봉(1,300m급)인 계방산, 태기산을 거쳐 백덕산, 치악산, 여주의 신륵사에서 한강을 건너 아래로 굽어 내포평야까지 이르는 차령산맥은 백두대간의 가장 큰 지맥으로 한반도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입증은 오대산 불교권에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정교하게 다시 만든 동여도 21장을 펼쳐보면 7m의 전도에서 오직 오대산의 오대는 굵은 톤의 실사전경의 산으로 표시하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전도에 위쪽을 어느 방위로 설정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아침 朝의 조선으로 해뜨는 동쪽을 위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 당시 N, S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아니며 북쪽을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은 고대사상에 북극성을 하늘의 중심으로 여기는 삼신사상에서부터 기인하며 세종 때 고유의 별자리인 천상분야 열차지도에서도 북극성을 중심으로 자미원 28수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동여도에는 백두산 천지가 맨 위로 올라가 있지만 모두 가는 선으로 그려진 반면 유독 오대산의 오대만 굵게 강조하여 그렸던 것은 한반도의 가장 역량있는 중심이란 점이다.
이러한 차령산맥의 백덕산에서 뻗어 내린 수정산은 평창의 조산으로 좌측은 향동리로 뻗어 후평까지 다다르고, 우측은 약수와 도돈까지 뻗어나가고 그 중간에는 방축골을 넘으며 증황(시루목)이라는 目(관자놀이)을 지나 노산에서 응결하였다. 이곳이 평창이다.
즉, 산맥을 나무로 비유하면 차령산맥 맨 처음시작되는 평창 땅은 나무 맨 먼저 마디로 위로 우선적으로 양질의 영양분을 섭취하지는 않을까?
수정산으로부터의 정맥의 힘을 받히는 축은 장암산과 삼방산이다. 이 두 산은 발왕산을 모산으로 발원하여 가리왕산 청옥산을 지나며 영월을 돌아 올라오는 영월단맥이 끝나는 삼방산과 청옥산에서 남병산으로 갈라지며 습곡산맥으로 주진까지 내려와 장암산을 이루는 즉 남병산과 장암산은 하나의 용맥으로 큰 준령을 이루며 수정산과 합일하여 평창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수정산의 평창의 주산이며, 이를 감아도는 수태극의 강을 만들며 평창땅의 힘을 받쳐주는 장암산과 삼방산은 평창 지형의 장엄한 무게감을 실어주는 산이다.
음양이 상응한다면 장암산과 삼방산이 陰으로 볼 때 위 사진에서 보듯 10km씩 넘는 장대한 단형 습곡산지로 이루어졌다. 이 거대한 힘과 맞물리는 陽을 수정산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이 평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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