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엮어지는 세종이란 드라마 한편은?? --- 1부 (역사적 배경)
글쓴이: 후세백작 08.01.29 21:48
난 모처럼 인기 절정의 "세종"이란 드라마 7편의 한편을 시청하였다. 우선 그 이야기보다 지금의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들을 잠깐 멘트하자. 국내뉴스로는 대불공단의 전붓대 철거 사건이 인터넷 뉴스의 헤드 탑이다.
새 정부의 상징적 뉴스로 처리되는대 나의 글<근조-- 민주 개혁 세력 잠들라> 란 글 중간에 대불공단을 게제하였다. 그것을 보면 대불공단 전봇대가 무슨 힘인가 알 수 있슬 것이다. <대불공단은 현대 중공업 하부업체 삼호 중공업의 선박 엔진 제작으로 대불공단이 초만원인,,,>
또한 세계 불황의 근저리는 근본적으로 중동석유의 고갈화 원인의 초입에 징후이겠지만 내글중 주식 2,000 포인트에서 미국 연방금리 조정의 준비제도 이사회의 마귀 그린스펀의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써브프라임 모기지로 미국의 생때 부자가 쭉집으로 돌아서고 이에 따라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엔 캐리 자금의 어바우트(탈 제로금리)에서 금리 인상이 다가오는 무서운 질서 개편이 있으리라.
자, 이제 우리나라 뉴스가 나오기 전에 그린스펀 마귀의 연방금리 인상의 잘못이 큰 문제를 않고 있다는 나의 생각이 적중되지 않는가?? 그리고 전 세게에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 중명되지 않는가?? 아마 지구상에 나 혼자서만 그린스펀을 나쁜 눔이라 떠들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미국 코쟁이들은 그린스펀을 두둔하고--- 그린스펀이 십년전 증시 거품일때 잘못과 써브 프라임 모기지론에 간접 관여된 것 내가 입증한번 해 볼까?? 이제 미국의 지성들도 그린스펀을 욕하는 소리가??
그래도, 힘없는 약소국들은 준비제도 이사회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신주로 모시기만--- 이보게들 이젠 딸라의 지폐가지곤 똥도 ?을 수 없다는 시간도 차츰 다가올게야. 그리고 월가는 흑인들의 운동장이 될테지.. 분명 딸라의 신용은 떨어지고 그것이 세계 공용 지폐란 말은 없어질 것이다. 아마 이 시대엔 유로화 결정에 앞장섰던 후세인도 복권이 될수 있을런지??
나는 칼럼쓸 주제는 아니지만 나의 독설은 쓸수있으니---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지구상에서 "평창 22, 25" 의 제일 현명간 감각의 미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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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드라마를 한편 야기하자 요즘의 역사 드라마는 옛날의 민비, 인현왕후, 대원군 ,그 다음 시대엔 왕건 , 한명회 ,이성계, 그리고 요즘 태왕사신기, 정조, 세종으로 그 변모는 이야기거리에서 활극과 과학화로 날로 발전해 가는듯한 느낌이다.
사실 난 픽션을 조아하지 않치만 일전 왕건과 이성계 드라마엔 실망이 좀 있었다. 우선 왕건의 드라마 초입을 야기하면---
신라말 진성여왕인가??-- 어린 처녀가 왕의 대물림으로 삼촌의 대리 정권에 같이 침숙을 하는 것으로 인기를 모으는 것 같던데 --- 이런, 젠장,,, 신라 천년사에도 이런 글은 없다. 작은 아버지와 불륜에 빠지다니, 물론 유모부란 가능성은 있지만 친 삼촌과 그런건 ??? 방송의 의무보단 인기가 우선처리되야 밥 묵고 사는지??
내 잠퍼 벗고 더 세밀히 이야기 보자 !! 1,000년 신라말에 향략에 빠져 포석정에서 술잔에 회의를 하는등 천년 내려온 정권은 무능해지고 사회는 집권층 양반 세도가 심하였다. 불교 국가의 교리위주의 교종으로 신분의 규율을 엄히 하였는데 자장과 의상이 선종을 수입하여 만민 평등을 주장하니 이건 경주 귀족계급들이 허용치 않고 이단으로 몰려 전략하여 경주에서 제일 먼 변방의 깊은 산 골짜기로 절간이 숨어 들어갔다.
신라 사회는 향략에 의한 집권층의 부패가 만연되어, 세금 거두어 경주 조정에 보내니 돌아오는건 없고 향략만 일삼고 백성들은 헐벗어가니 전라 도지사로 임명된 견휜과 원주경찰서장 격의 양길은 조정을 불신하여 견휜은 하나의 국가 형태로 발전되고 양길 아래의 원주 영역의 철원은 곡창지대인데 지방 호족 부자들이 신라에대한 반기아래 궁예가 탄생되어 양길을 두목으로 여기며 견휜과 궁예는 한 평생 이 땅의 통일과 평화에 복숨을 걸었었다.
견휜 도둑은 군사를 일으켜 대가야(합천)까지 점령하고, 목적없이 서라벌에 침공 하여 경애왕의 처와 재상들의 목을 베고 재상들의 처를 강간하여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러나 왕건은 궁예의 휘하에서 독립하여 경주를 쳐 들어가며 군사들아게 양민약탈을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엄명을 내려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 후일 화백회의에서 경순왕은 천년의 신라를 휴머니티 고려 왕건에게 맏긴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이세민 처럼 전쟁으로 강자가 새 국가를 건설하나 우리나라는 백제의 의자왕의 죽음으로 660년 백제의 문화는 끝난것을 제외하곤 꼬리를 무는 역사가 이어지는 것이다. 아무튼 왕건의 도의 정치가 이땅에 삼국 통일의 주인이 되는 역사적 사실에 드라마는 그 서두에 불륜을 가지고 인기 몰이를 하였던것 아닌가??
또한 이성계 드라마에서 미흡 하였던 점은 피의 혁명을 부르고 왕자의 난을 겪으며 이성계와 방원이 진정 원한것은 왕족의 부귀가 아니라 이 조선의 백성들의 외침과 내란과 궁핍에 대한 안녕이었다.
나 개인적으론 이성계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지금 이 세종의 드라마에 첫째 양녕대군이 나오는데 셋째 충녕대군에 왕위가 넘어가게 된 동기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고려말의 상황을 보면 묘청의 서경 천도론 이후 정중부의 난등을 거쳐 60년동안의 최씨의 무신정권으로 몰락보단 숙받이 되었고 이웃의 강대국 원의 지배로 볼모로 갔던 공민왕은 원의 위의 딸 노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여 돌아와 왕에 올라서 노국공주가 서거하자 눈밭에 맨발로 30리 길을 묘까지 찾아가는등 노국공주에 미치게 되니, 신돈이란 땡땡이 중이 최면을 걸어 노국공주의 화신이란 여자를 공민왕에게 주고는 내 팽게쳐진 정권을 대리하게 된다.
그 시대 개성 장안의 소문엔 노국공주 화신의 여자가 낳은 우왕, 창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의 아들이란 소문이--- 백성을 속이지는 못 하는 모양이다. 허기사 신돈도 이 세상을 다 얻은것 이전에 남자이니까---
이 판국에 조정은 고려의 국권을 신장코져 국론을 모아 요동정벌 계획을 세운다. 옛 고구려의 땅을 회복하쟌 야기인데 최영장군은 정벌 1군에 조민수, 3군에 이성계 장군을 내정하여 압록강을 건너던중 이성계는 위하도에서 리턴한다.
이걸 왜 쓰냐고--- 양녕이 왕에 오르지 못하는 뜻이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위하도 회군의 반대적 생각은 려말 조정의 3은 5은 , 정도전 등의 성리학자들과 총사령관 최영의 뜻이 맞아 요동의 여진을 정복하고 그 위세로 원을 지지하여 부상하는 명이 원과 고려를 못 치게 하자는 의도이다.
나, 후세의 생각으론 이성계가 위하도 회군을 하지 않고 요동 정벌을 갔었다면 10만의 군사중 정예부대가 몇만인줄 몰라도 요동의 여진들은 행정 조직이 없기에 지나가면 내 땅이 되는 것이다. 다만 원과 신진 명나라의 균형의 문제는 있지만 요동 정벌은 성공하고 정예 부대는 돌아 오지만 그에 따른 부식차 부대들, 즉 노비들은 아마 꽁무니를 빼서 그곳에 정착하리라. 요동은 이모작의 기후와 토질이 조은 땅도 있기에 돌아와 노비가 되느니 그곳에 정착할 사람들이 많을게 아닌가? 그럼 후일 명에 씹힌다 하여 무너져도 후일엔 한민족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어린구슬 친구가 언젠가 나보고 광개토 태왕에 글을 쓰라던데--- 우리의 모든 국사책엔 광개토 태왕이 북진하였다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고조선시대부터 남하 하였다 고조선의 12연방등 ( 정사로는 아직 미흡하나) 그래서 그 북쪽이 우리의 영토이고 연방의 다수가 살고 있었다 광개토 태왕은 백재를 침공하고 백제 장수가 10명이 투항하는 등 남하에 더욱 신경 쓴 모양이다
지금의 장군총은 광개토인지 장수왕의 묘인지는 명확치는 않타. 장군총은 약 280평의 땅에 약 4층 높이의 화강암 하나에 11톤 무게의 돌 1,000 여개로 쌓은 적석총인데, 그 돌은 약 40리 밖에 채석장이 있다. 역사쟁이들은 약 3만 품이 들었을 거라는데 그놈들 현장을 뭐 아는가?? 이 후세가 볼땐 8만품 들어야 할 것이다. 40리를 철기기 약한 시대에 통나무에 의존 해서 돌을 날랏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지한 국력의 낭비일텐데--- 요즘 정조 드라마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수원의 영릉인데 국조오례의(원나라모방의 왕의 장례법) 에 따른 제일 모양조은 릉인데 이에 석실, 석물등의 품이 6천 품 정도로 조선 대다수의 왕들도국력의 낭비로 석실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장군총의 8만품은 그 시대엔 국력낭비의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작품인데,(고려시대에 인구는 총 4백만 , 조선은 8-9백만으로 추산한다)그러면 나의 생각이지만 여진 ,돌궐, 말갈족의 전리품의 노예들 이어었을까?? 광개토태왕 시절엔 영토확장(회복) 뿐 아니라 여타민족의 지배가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이 화려했던 옛 영토의 회복이 요동 정벌인 것이다. 고려 말에 중국 세력들 틈에 벌어지는 무 소유의 공간 요동을 주워먹기로 일순에 내부의 갈등해소와 국력신장이란 이중성의 묘책인 것이다.
위하도에서 이성게는 이 요동정복에 반대를 하는 조정의 세력들의 메세지를 받았을까?? 왜냐면 이성계의 후처 강씨부인의 아버지도 려말 장관급 대신이었다 . 이성계의 위하도 회군에는 반대의 세력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 반대세력들의 주요 골자는 요동은 중국당이고 머지않아 명이 원나라를 정복하면 요동때문에 조선도 망한다는 대국에 기생하여 살자는 의도이다. 과연 후세가 이런뜻에 동의할일이 있는가??
그래서 개성으로 회군한 이성계는 조정 반대편에 머물던 최영을 찾아 죽이고, 원과함께 존립의 뜻을 가지는 정몽주를 죽인 것이다.
윗 글의 가설들은 어디도 없고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니 자랑보다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그 배경들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 2부에서 양녕이 아니라 충녕대군이 왕이되는 내용을 야기한다.
나의 모든 글이 그렇듯이 나만의 생각은 시중과는 고립되어 있는 기분이다. |
출처 :평창 22.25동창회 글쓴이 : 후세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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