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을 하여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함께 해야한다라는 뜻이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프랑스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의 유래가 생겨나기에는 사회지도층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14세기 중엽 프랑스 북부 소 도시 칼레는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전쟁 초기에 이 도시는 영불해협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로서 프랑스는 이곳의 방어를 포기한 상태에서 마을주민들 스스로 영국에 맞서 항전하다가 11개월만에 영국이 승리하자 대 학살로 계획된 것을 에드워드 3세는 이 칼레市의 대표자 6인을 처형 하기로 마음먹고 스스로 대상자를 선정하라 명 하였는데 대 학살은 면하였지만 선뜻 죽음의 길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한 사람은 푸대자루를 입고 목에 밧줄을 메단체로 누구든지 나오라는 명령에 용기를 잃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하루 전날 자살을 하였고 6명중 하나가 되겠소 하고 소리지르며 나서는 사람이 칼 레시의 최고부자였고, 법률가,시장, 귀족계급이 나서서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6명이 영국진지로 찾아 들었는데,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그들은 처형직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6인의 용기와 높은 희생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적과 싸웠다고 한다. 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최고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해도 1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 전투에서 전체의 3분의 1이 죽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 귀족들은 이처럼 노예와 귀족의 차이를 사회적 책임 이행능력에서 찾았다. 또한 로마에서는 병역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호민관이나 집정관의 고위 공직자가 될수 없슬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당연시 여겼다.
미국의 찬란한 기부문화 로마 시대에 이어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 면면히 계승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신흥국가인 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처음부터 봉건적 계급제도 없이 만인이 평등한 민주국가로 시작한 미국에는 유럽과 같은 귀족계급이 없었다. 따라서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엘리트계층만 아니라 모든 시민의 책무로 형성되었다.
또 미국에서 찬란한 자본주의의 역사가 꽃을 피우게 되면서 노블레스의 자리에는 기업가들이 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기업정신에서 찾아볼수 있다. 앤드류 카네기 이후 록펠러, 포드, 그리고 최근의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국의 부자들은 사업을 통해 쌓아온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데 이바지 하였다.
지금까지 무려 300억 달러 가까운 돈을 기부한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라고 말한다. 미국 부자들의 이러한 선행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이제 미국인들은 기부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카네기 이후 한 세기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기부의 전통이 부자들의 미덕이자 미국의 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특히 2006년 2월, 세계 2위의 부자 워렌 버핏은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단에 370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자신의 작고한 부인과 자식들 명의의 재단이 여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돈을 '믿음이 가고, 자신보다 운영을 잘 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라고는 하지만 남인 빌 게이츠의 재단에 선뜻 쾌척한 것이다. 참으로 '투자의 귀재'요 현인'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전체 미국인들의 98%가 어떤 형태로든지 기부에 참여하고 있으며 소액기부자들의 기부가 총 기부액의 77%에 이르고 있고 그들의 연평균 기부액수가 140만 원을 상회한다는 최근의 통계가 그러한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제 미국사회는 도네이션(기부)가 모든 사람에게 일상화 되에 선진국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살펴보면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은 인민 해방군 총 사령관 비서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고 그의 시신은 다른 인민과 형평성으로 아직 북한에 안치되어 있다 한다.(중공군 작전 지휘본부의 야간 공습에 수백발의 포탄이 떨어지며 그 자리에서 전사 하였고 그의 시신은 함경도의 중공군 묘역에 중공군 전우들이랑 함께 안치 되었다 한다)
후일 모택동은 아들을 군 복무시킨이유로 난 중국 공산당 중앙 주석으로 내 아들만 빼고 다른 자식들만 한국전쟁 전선에 파병했다면 내가 어떻게 지도자라 할수 있는가? 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인으론 가슴아픈 일을 볼수있다.
이제 우리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있었는가??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있었다. 경주 최부자 집안은 무려 300년 동안 만석의 재산을 유지했으며 많은 선행과 독립운동의 후원자 역할을 통하여 부자로서는 드물게 존경과 칭송을 받았다. 최씨 집안은 권력을 멀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였으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검소하게 살며 자선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항일 독립운동과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으로 기나긴 부의 세습을 마무리했다.이는 피렌체의 메디치가의 르네상스 시초의 인문운동지원의 200년간보다 더욱 긴 세월간의 부의 사회환원이었다.
또한 독립운동의 선구자였던 왕산 허위(許蔿)의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던 이름 높은 학자 집안이었는데, 왕산은 의병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유격전을 벌이다가 기어이 일경에게 체포되어 사형되고 만다.
최재성, 그는 가난이 싫어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출하여 소련 군수산업에서 막대한 돈을벌어 우리나라의 광복군에 태동을 만들며 전 재산을 쏟아넣고 말년엔 쓸쓸한 인생이었지만 그는 쏘련인의 양자로 쏘련 국적을 취득하고 안이하게 살 수 있었지만 조국을 위한, 동포의 구원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블레스 오블리주인가?? 하지만 우린 그의 이름석도 모른채 살고있다.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많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특권층의 사회적 책임을 찾아볼 수 있었으나 최근 우리의 기부문화는 어떠한가?? 우리에겐 준조세란 도네이션(donation)이 있다. 이는 개인기부보다 기업의 기부가 많고 그 기업의 기부도 준조세적 성격의 비자발적 기부라는 것이 있는데 이의 목적 또한 사회의 환원이라기보다 굴절된 것이다.
우리사회의 단면을 다시금 본다면 이런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만 아니라 지성과 위정자들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수 없다.일본이 메이지유신이 성공할수 있었던 배경은 그 당시 현존 학자들의 위인이 있었다. 농업학자, 경제학자등 4명 정도의 학자들의 현실연구와 이에대한 국민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메이지란 혁신이 가능하였다.
우리의 학자들도 강당을 차고나와 정치로 그의 지식을 국가적 범위에 활용하는것도 바람직하지만 그 많은 학자들의 참신성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지만 그런 정치배들은 논문이나 표절하고,,,,,이는 인해전술의 중공군도 하다못해 앞줄은 따발총을 가지고 나왔다는데 군인이 목총들고 전쟁에 나가는 격이다. 이를 어느 국민이 찬양하여 줄 수 있슬까??
또한 그들의 출세를 막는건 못난 자식들이 위법적 물의가 뒤따른다. 이름도 "유명한"이라는 어느 장관은 그의 자식의 부정시험으로 곤욕을 치러서 더욱 유명해지고 나는 그때서야 그 장관의 이름을 알았다.열심히 공부했던 선의의 피해자에게 미안하단 말보다 내가 장관이 되었을때 그런 시험를 치렀다면 더욱 공정했으리란 비 신사적인 발언을 한적이 있는데...그 유명한 모택동을 보라,,,잘난 애비밑엔 잘난 자식이 있지 않은가??
또한 케네디의 아버지는 당시 5만명의 팬터곤다음으로 시카코에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닌 거부로 2차대전때는 영국대사를 지냇으나 그러면서도 그의 첫째 아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조종사로 실종되었다. 안위보다는 책임과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이것이 오늘의 미국의 젊은이들의 뉴 프론티어적 기상이다. 그것이 오늘의 위대한 미국을 낳는것이다. 우리네 젊은이들 툭 하면 방위할려는 의식과는 상반되지 않은가??
일전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비상사태시 청와대 지하 작전실에 대통령아래 비상회의에 정규 군 필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일부 국민들은 비아냥거리던데...그러나 그것은 위법은 아닐지라도 국무위원이 대부분 장애자로 병역면제자라면 긋도 참으로 우서운 일일수도 아니라 할수 없다.장애자라고 제한한다면 이는 국민평등의 헌법의 정신엔 위배되겠지만 위에서 말한 로마의 집정관엔 뽑힐수 없는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는가??
작금엔 우리의 국무총리가 몇 개월째 권한데행에 미룬채, 총리인준과정에서 일전엔 40대의 정력의 어느 정치인이 그의 부도덕성으로 낙마하였다. 흥부보다 놀부가 정의같은 물질만능시대에 한가지 단적으로 본다면 그의 전 재산은 3억밖에 않 된다는데 그는 그러한 도덕성으로 총리인준에 고배를 마셨고, 다시금 총리 인준자에겐 병역의 의혹이 부풀려지고있다.
자!!우리시대엔 진정 칼레의 시민 6인이 존재할수 있슬까?? 모든 국민에게 묻고싶다. 물론 빙산아래엔 90%가 존재하지만 건부재기 띠끌은 모두 수면위에 부초로 뜨지 않턴가?? 우리는 지금 총리인준에서 어떠한 결론이 중요한게 아니라 한치의 의혹도 없이 모든 국민이 신뢰할 수있는 과정이 더욱중요하다.만약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행동을 위한 결격사유가 있는 100명을 뽑으면 무얼하는가?? 그럴랴면 차리리 공석이 더욱 현명하지 않을까??각 부서의 수장들 모두 이러한 의혹이 없는 믿음과 그의 신뢰가 더욱 발전적이고, 그들로 하여금 책임과 봉사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선행을 낳게할수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제 앞의로의 대한민국에도 6명이 아니라 6천명, 6만명의 칼레의 시민이 나타나길를 희망하면서 이 글을 접습니다.
*로댕의 조각상 칼레의 시민은 칼레 시의 기념비적인 동상 건립을 로댕에게 의뢰 로댕은 10년 각고의 제작기간을 걸쳐 고뇌에 차고 또한 보는 사람과 높이를 동일시 하기위해 좌대판도 얇게 하는등 시민과 호흡을 같이하는 동상을 칼레시청앞에 제막하였으나 사람들은 이 동상이 모뉴먼트적이 아니라는 실망에 동상을 해체하였다가 이후 복원되에 지금에 이르는 불후의 수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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