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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꼬리를 잡아보며...

[ 일본의 수탈도서 반환과 일제 강점기시대에 분서갱유]

 

      [ 일본의 수탈도서 반환과 일제 강점기시대에 분서갱유]

 

                                                                          후세백작        10,11,14,01,16

오늘 뉴스에 일본이 강점기 시절속에 이또오 히로부미시절에 왕실의궤등 도서를 반환한다고

기뻐한다., 그런 궁중의례 책이 있으면 더 조치만,,,

그 인덱스는 발표가 않되어 아직 알수 없지만 진정한 마음의 반환이란 우리의 단군의 역사가

수록된 역사서가 52권 있어야 한다.

이런 책들은 1925년 싸이토 총독이 한민족의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단군이나 고조선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은 모조리 압수 51원 20만책을 불태워 버렸다.

나치도 파리의 예술은 불태우지 않았는데 이 쪽바리놈들은 쌍놈들 문화상식밖엔...

그래서 고조선이나 단군의 기록이 없는 삼국유사, 삼국사기만 살려두어 현존 최고의 역사서가

되는데,,,단군역사가 다시 알려져야 한다.

 

그 한 예로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한글의 문자는 단군시절의 문자에 세종대왕은 다시 규칙을 정

하고 발음을 붙여 만든 것이다.

BC 1850년대의 문자기호도 중국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세종대왕은 그 시절 어떤 책

에서 한글문자를 인용 했는지 지금껏 알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고서를 분서갱유한 일본은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다시 찾을수 없는 문화말살의

분서갱유를 단행 하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당나라 시절의 분서갱유 그리고 일본의 강점기 시절 분서갱유는 세계 3대

분서갱유이다.

지금은 제목도, 내용도 알수없는 우리의 고 역사서들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의 고조선의 역사

는 문자가 있는 역사시대를 넘어서 선사시대( 문자가 없는 시대)까지의 역사를 망라하는 세계 최

고(最古)의 역사서들일 것이고, 그 역사서들이 있어서 우리역사에 47대 단군( 임금)들의 역사를

그려야 하며 그로서 광개토대왕 이전에 우리의 고조선 땅을 증명하는 일이다.

 

( 당시의 가람토 문자 유물 )

 고조선의 시작은 BC 2,333 이니, 이 문자는 고조선 중기쯤인  고조선 483년 이후의 유물.

또한 한문의 출현은 이 이후로 상형문자의 태동은 日 月 天 地 의 상형문자로 지금의 한족

의 고유글씨가 아니라 고조선 어느 부락( 12연방) 등의 문자를 차용한것이라 생각해본다.

 

지금의 중국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그때의 땅이 수없는 제국의 흥망성쇠 속에서 2천년 지난

지금도 그때의 영토가 지금의 중국의 영토인데,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기록속에서조차 분실하고

말 것인가??

 

그 기록의 좌절이란 다른 예로 들어본다면 우리의 문화는 대부분 사찰에 의존하고 민중속의 아리

랑엔 고서성어가 없어도 스님들은 한문의 경을 달달 외우는데 어쩐일인지 지금 사찰에 남아있는

50여개의 당간지주 주춧돌로도 그 당간지주의 용도도 모른다.

강릉의 당간지주 받침돌은 높이가 3M가 넘는데 그럼 그 안의 기둥은 얼마나 높을지도 의문일뿐.

 

우리민족은 제규격이나 모든 행사의 기록을 등한시 하였어도 산사의 당간지주는 어느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한문에도 대가이실 스님들이 귀찮아 그런 기록이 없슬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우리 민족성엔 기록을 등한시 하였는지도,,,,,

 

지금이라도 고조선의 역사를 정사로 이입하자면 그 고서의 책들이 필요할 것이다.

 왜가 침입하여 우리의 고서를 분서갱유하였을 지라도 원본이나 한권씩 정도는 아마 그들의 고궁

박물관 지하벙커 도서관쯤에 잠재우고 있슬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를 알고 그 역사책이 반환되어야 지금의 일본은 진정한 친구가 될수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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