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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골방엔

나의 병영일기 (1)

 

 [나의 병영일기]

 

글쓴이: 후세백작 조회수 : 1007.09.15 14:15  

 

오래전의 나의 병영수첩.

입영을 할려고 버쓰로 서울로 향하였다. 여기서 내일 조치원가서 하루 자고서 다음날 훈련소로 입소할 예정이다.

입영전야는 서울에서 친들과 한잔 술에 2차. 3차까지, 여관방도 각방 쓴다나, 그래 방 닷개에 --  

이래저래 나의 돈은 한푼도 없이 바닥났다.

이젠 호진이 친구가 서울서 돈을 배급받아 나 차표랑 내일 밥값 알아서 하든 아니면 친구덜 빼앗어 먹든 난

통 뿐.

 

군 3년 돈으로 살아간다면 아마 자갈 논 서마지기는 팔아야 될 긴데?? 

까짓것,, 밥주고 담배주고,,,군대 안 해주는게 또 뭐 있으럄?? 군대가면 돈 있어 뭐 할까? 난 입대전에 이미 바닥이...

 

다음날 조치원으로 내려가 훈련소에 입소하니 물건과 돈을 다 집으로 보낸다나--그리고 삼천원만 저금할 수 있다

나--훈련중에 휴식시간에 사 먹으라나,,, 하루에 백원,, 보름달 빵 하나..그거 뭐,,, 않먹어두 살제.

 

아마 입대하는 친구덜 중에 유일하게 나 혼자만 저금할 돈 3,000원 한도가 아니라 일푼도 없었다.

내가 들고있는 나의 전 재산은 호진이 보고 담배 두곽 사랬더니 긋도 중질의 청자 두곽뿐. 기관병 검열시 난 돈이

없다니 씨알이 안 멕히더군.  군대 입대하며 돈 안꼬브라치는 넘은 없슬 것이다.

 

내가 무일푼이라니 그 기관병은 믿을소냐,,, 나를 의아하게 보더니 혹시나 담배 까치처럼 돈을 말아 숨켰슬까봐

담배를 두곽 전부 반씩 부러뜨려 보고는 땅바닥에다 버린다.

안 주워도 될걸 주워들며 어허 참 드러워라 하고 소릴 냅다 질렀다.-- 아무리 군대라고 넘의 물건 고참 맘대로

하나--군대 조까다더니 듣는 그대로구먼.

아니 남의 물건 왜 버립니껴?? 그래 헐수있냐. 뿌러진 담배 들고나와 꽁초 피우며 개시~벌 넘들하며 투덜거려봤자--

말짱 도루묵이랄까.

 

그런데 옆의 친구덜 가만보니 어떤 넘은 -- 뺀스 고무줄속에 돌돌말이 2만원, 어떤 눔은 런닝샤스 목 뒤에 만원

줄을 꿰고----얼어 빠질 놈들---설마 나라가 니넘 하나 먹이지 못해 굶겨 직일라구. 으,,, 쓰발놈들.

 

쌍팔년도에 삼촌들 군대가 배고파 꾸정물에서 두부 건져 먹었다는등 구닥다리 소식만 듣고 군대 삼년 하숙할려

꼬불치는 불쌍한 친구덜,

쌍팔년도 방법 아직도 써 먹는 ,,, 세월 변할걸 모르는 굼뱅이 같은 친구덜--그래서 3년간 어찌 배길고....조ㅈ나

고생 좀 해 봐라.

 

내무반 배정이 끝나고 내무반장이란 험상굳고 쌔커먼 병장한 사람이 성큼 다가와 소대원들에게 수첩 나씩 주

적으란다. 

전투수칙 하나---나는 조국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 받아적긴 적었다만 속빈 소리지.

누가 맹목적으로 죽음을 바쳐-- 미군들 중에 무식쟁이 병사들이 보면 그건 사무라이 귀신이라 그럴거다.

 

미군들 그런 맹목적 애국심은 하나도 없고 내일 진급시험이라면 오늘 데이트도 취소하고 열심히 측정시험 연습

인데, 우리 한국 살람들은 내일은 내일 오늘은 한잔 술에--- 그러면서 어찌하면 컨닝하고는 측정관에게 엉터리

와이로 한번 쓰면되지 하는 생각만 만연하니--이거 나라가 전부 그렇치??

 

조국에 몸과 마음을 무조건 바쳐 충성하라느니, 그보다 나는 군의 계율을 엄격히 준수하고 주어진 책임완수

성실한 사명감을 불태우며 이로서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

언 넘이 썼는지는 몰라도 맹목적이 아니라 이렇게 합리적이라야 될게 아닌가?? 하는--

 

무더운 여름날 선풍기도 없는 침상에 줄로 앉아 받아 적기만 3일째 사단장님에게 군대 입소신고를 하고 이제 무병

니 계급도 없는 계급, 이등병이 되었다.

 

대뜸 날 보고 수첩 읽어 보란다 나를 찍는지 잘 알지--- 머이 겁날꼬

난 노트에 단 한줄 밖에 --- 침상에 앉아 낮잠자기 바빴으니-- 읽을게 없었다. 친구들 보니 노트에 빼곡히 열장

었는데, 나는 스타트로 사고 보고서 한장을 썼다--- 맞지도 않았다. 쿠샵 20번 하는데나의 친구 촌넘덜,,

그런데 친구놈들 보니 겁에 질려서---- 촌 놈들 그런 봇짱으로 강냉이라도 어뜨케 팔아먹나.

 

얼마나 겁먹고 조용한지,,, 내가 사고 보고서 한장 썻지 지넘들이 왜 겁먹구 내무반이 어디 상원사 선방보다 더

용해 지는..

그래..이젠 이등병인데,,,,난 친구들이 더 겁먹고 하루 속히 빼짱 좀 있고 할거 하는 인간들이 되길 바랬다.

 

취침시간이면 잠 안자고 전투수칙 외우느라 중얼 중얼--- 무슨 곡 소리 같기도 하고 ---

나와 향도란 놈은 한장의 모포를 덮는데 둘이는 의기가 상충한지 ""취침"하고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포로 얼굴까지

덮고 얼릉 잔다, 그래야 불빛을 차단하니...

내무반장이 취침하러 들어오며 이 친구덜,,, 안 더운가 하며 중얼 거린다.  그 더운 여름밤인데 모포를 머리까지

집어 쓰고 잔다니 -- 공부도 안하고,

 

아니, 군대 시험보고 다니면 돌짱들은 만년 꼴찌 할텐데...

 아마 한신 장군님이 옆에 계시면 하실 말씀이...군대 말이다. 할때 남과 똑같이 하고 쉴때 남 부럽지 않게 쉬는거야.

아마 이런 명언을 남기셨을....

 

매일 저녁마다 전투수칙등 암기 시험이다. 시험후 침상에 일렬로 서서 내무반장이 지나가면 손 바닥을 내밀고 ----

1번 향도가 처음으로 40점 입니다 하니 80점 기준에 손바닥 40대를 맞는다.

그놈 어디 체육과 출신인데 머리가 나 보다 더 깡인 모양이다.

다음 2번 후세백작 91점. 난 손바닥 내 밀게 없다 그냥 91점 하니 내무반장 약이 올라서 찡그리던 모습이---

아마 난 맞으면 고놈 내무반장이 젖먹던 힘까지 발산할거 나두 잘 안다.

 

약 열흘간의 시험에 난 한대도 않 맞으니---

반장도 약이 오른 모양-- 훈련소 졸업하고 어느날 밤 열두시 전방으로 떠날때 내무반장이 악수를 하며 날 보고

인천 소금이냐?? ---아니야 나 평창 감자요, 하니,,,,너,, 자대가면 아마 고생좀 할걸,,,그럴만 하겠지.

 

하지만 나라고 군 생활 개판으론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의 친구덜이 그렇게 뱃짱도 읎고 간이냐곤 그렇게 작아서야,,,

저 친구덜,,, 더 혼줄 빠지게 사고 보고서 한장 더 쓰고 단체 기합 매번 받았으면...

 

나의 술 얻어먹던 친구덜,,, PX한쪽 구석떼기에 돌아서서 매번 짬밥대신 보름달 빵으로 혼자 끼닐 때우는..

난 그런 친구덜 볼때마다,,, 그래 네놈이 짬밥 않 먹구 제대할 수 있나 보자...

 

군대가면 고참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국방부 시계는 꺼꾸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또 "군대는 말이다 빽이

좋아야 한다나 어쩐다냐??"  그런데 아무리 빽이 좋아서 국방부 시계, 빨리 돌려도 지넘이 나보다 더 빨리 제대할줄아냐??

 

지넘이나 나, 그리고 한신 장군님도 똑같은 시간속에 살아 가야  하는게 진리이리라.

그래서 이 후세백작은 3년이면 제대하지만 매일 보름달 빵으로 짬밥 대신하던  그 친구의 감정속에선 국방부

감정이 고장이 나서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한 30년같은 느낌으로 군 생활 보냈슬 것이다.

 

자 그럼 한신 장군의 일화를 조금 보고 가자.

한신 장군님은 함경도 영흥의 부잣집 태생으로 김일성이 이북을 장악하자 북한에선 별 할일이 없고, 남한으로

산주의 타파의 특채 2기의 육사에 입교한다. 동기는 박정희, 이규동 장군등이다.

 

6,25가 터지자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낙동강까지 밀려 갔는데 이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렸다.

요것만 뭉개면 이북은 적화 통일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전쟁 발발 3개월 내로...

맥아더가 허리를 끊는 인천상륙을 감행하였고 백선엽의 1사단은 세계 전쟁사에 유래가 없다는 (원동한 교련 선생

강조하는) 다부동 전투로 다부동에서 수원까지 8시간만에 진격하였고 구미,왜관과 이에 밀리는 영천 지구에 마

지막 까지의 육박 방어는 한신의 연대가 막아 내었던 것이다.

 

한신 연대장은 사병과 같이 행동하고 전선 한 복판의 포화속에서 진두 지휘하였던 것이다.

전장속에 지휘자의 유고시엔 그야말로 난파선이 되는데...

한신 연대장은 전장속의 무력해 지기쉬운 부하들의 자신과 힘의 격려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오대산

퇴각하는 인민군들의 대관령 전투에서도 방어의 임무에 철저히 하였기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대관령 전투에서 적을 용감하게 방어 하였고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전후 군의 부패를 척결하는데 앞장섰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장교들의 일제 사관학교 출신들이 대부분이라 별로 후한 대접을 해 주지 않고 박봉을 었다.

 

그 예로 박통의 일화 단면을 잠깐 보면,,,

박정희 대대장의 사모님 육영수 여사는 저녁이면 참모에게 전화를 걸어 쌀이 떨어졌다고 알린다.

참모는 즉각 부대로 뛰쳐가 밀가루 한포 가져온다. 그래 오늘 저녁은 늘린 국수이다. 아마 육 여사님은 우리 할머만큼

홍두깨 질 잘할 것이다.(박 장군도 부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봉으로 생활하는 한 단면의 이야기이다)

 

해방후 한 시대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한신 장군의 부대는 병사들의 식량을 가져가는 장교는 없었다.

한신 장군은 어려운 그리고 휼륭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다만 병사들의 먹을것 다 주고 잠잘것 다 자게 해주고,

다 하는 원론만 지켰을 뿐이다.

 

한신장군은 어느 술집에서 접대하는 여자가 죽은 자기 부하여 마누라란 것을 알고 평생 여자가 있는 술집은 하였다

한다. 또한 장군의 와이프는 평생 짚차 한번 못 탓다 한다--- 관용차이기에 택시를 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군은 제일 만은 거리의 헬기를 탔다는데, 부대 주변을 내집 울타리처럼 세밀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 야전 장군은 박정희의 등용으로 교통부 장관, 감사원장 까지 지내고도 다시 군으로 복귀하여 평생을 군에서 냈다.

아마 4성장군으로 전 세계를 통해볼때 이러히 엄한 규율을 지킨 대장도 드물 것이다.

 

 

----------< 그럼 내가 격은 일화 한 토막 >-------------

 

나는 쫄병때 따블백 메고 소총 메고 연대 취사장에 파견 간적이 있다.

이는 연대 인사계 권한이라 또 사단 사령부 앞에 살고있는 나의 선배의 빽 작용이 따랐던 것이다.

근데 주방장 한 보름하니 이거 양심에 못할 것 같아 내 맘대로 소대로 다시 돌아왔다. 내 빽이 젤 조으니-- 내맘대로

했지.

 

어느날 취사장에 무우 잎 한 트럭을 내리고 김치 한다는데, 취사병 고참이 방위 다섯명 전부를 집합시키더니 같은

무우잎에 위로 올라서서 작뎅기로 반쯤 금을 긋고 방우(방위)들 보고 반은 빨리 쓰레기장에 넣으라 한다. 

란 잎, 파란 잎 구분 자체는 필요없다. 다만 방우들 퇴근전에 열심히 부려 먹어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이 후세 혼자

밤이 새도록 다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니 방우들 오줌한번 누고 아래 한번 쳐다볼 시간을 안 주더군,,, 이 똥방우들은 아예 오줌눌 시간이란게 없다.

그리고 나머지 반의 무우 잎은 욕탕에 쓸어 넣고 물 뿌리더니 소금 조금 치더군--- 그게 끝이야.

목욕탕에 목욕한번 시키고 씻어 소금에 저렸다가 김치 하는게 아니다.

 

다음날 아침 식당문은 열리고 밥하는 김이 무럭 무럭 빠져나가니 호각소리에 열을 맞춰 군가를 부르고 찾아오는 병사들,,,

아무리 짬밥이지만 밤새 야찬도 없이 출출한 배에 한끼 식사 얼마나 그리울까?

일직 사관이 식당에 배식 열을 맞추는데 우리소대 고참은 분주하게 나에게 싸인을 보낸다...

그거야 어려운게 아니지 배식기 내밀면 곱빼기로 얹어 주면 되는 것이니..

 

그런대 고참 취사병 행동이 이상해 진다.

그 무우 잎파리 조금 식기에 덜더니 스팀에다 죽이고 쇼팅기름에 꼬추가루에 된장발라 비비더니 옆구리에 차다가

일직사관이 내미는 식기에 그 김치를 주더군...

 

그 개똥같은 어느 중사 왈,,, 어~ 오늘 김치 맛 조아!!!

지랄할려는 새끼 니는 단추눈깔인가--- 병들은 소금에 제대로 죽이지도 못하는 풀 잎파리 밭으로 다시 살아 가는걸 

뜯고 있는데, 안보이나-- 어그 씨발 내가 연대장 했어야지.

긋도 어느 병장에게 김치라고 그넘 무우 잎 하나만 덜렁 주니 식기를 안 치우고 가만있길래 왜? 하고 물으니 란다.

그래 밥보다 더 많이 주며, 야... 많이 먹어라.. 이넘으  취사병 끝발은 아무나 반말이여.. 까불면 밥 안주니..

그야말로 짬밥 대통령이다. 

 

근데 취사장에 전화가 찌리링 온다.

이 고참 아 옛 아 옛 있어요 옛 옛 하더라. 보아하니 내용은 연대 참모 마누라가 고추가루, 쑈팅지름, 된장 다 달라더라.

4호차 보낼테니 실어 달래나 어쩌나...

할수있냐?? 있으면 있는데로 다 퍼 줘야지. 미친눔-- 부관 마누라도 짬밥 만들어 먹는가 보다.

 

또 어느날 냉동 임연수 두 괘짝이,, 고기 크기가 80쎈티 족히 되던데, 아마 시중에 그리 큰 임연수는 본적이 없다.

이게 냉동인데 그날따라 방우들은 다른 사역 나가고,,, 내 혼자 도끼로 뜯으려니 30분 걸렸는데 겨우 마리를,,,,

고참 취사병왈,, 나머지 한박스와 여덟 마리는  짬밥통에 넣으라나..

훤한 대낮에 누가 볼까 가슴이 콩덕거리며 짬밥통에 갖다 던지니 파 묻을 것도 없이 자동으로 짬밥속으로 꼬르륵

다 들어가고 보인다.

 

참 아깝더라 -- 옛날 우리 어머니 시장가서 이면수보다 작은 새치 한 마리도 500원썩에 사셨다는데 아마 500원

비례로 따지면 족히 5,000원 넘을 이면수를 두짝이나---

그리고 이 두마리로  국물은 똑같은 거다. 두마리 뿔린 국물을 400명이 떠 먹는기야... 그리고 그날 밤 으슥한 시간

인데 짬밥장  아자씨가 쇠주 4홉 네병을 가지고 오더군---난 영문도 몰랐는데 한잔 먹으며  그 답을 알았지---

낮에 짬밥통에 버린 그 임연수 잘 파내 갔다는, 아하,,, 그랬군.

그 즉시 난 4홉 세병 소주 갔다 깨 버렸다--고참 병장싸끼-- 씨벌렁 거리더군.

이게 3-400백명 굼주린 댓가라 생각해봐라--- 아마 친들도 오바이트 했을기라.

 

<더 우서운 일--->

추석맞이 돼지고기가 통째로 횡으로 갈라 반 마리가 왔다.

그리곤 취사장 전화통이 불아 난다. 헐수 없지 일단 요지 요지에 갈라 보내고, 남은건 깍두기 고기 썰어 돼지고기

국을 만들었다.

아침 식사시간 --- 군가부르며 식당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치,,, 고기냄새도 나는 걸 벌써들 아는 모양이다.

런데 배식을 할때 계단을 올라가서 드럼통보다 더 큰 국통에서 국자로 국 뜨기엔 역 부족이다.

왕건이는 밑에 가라앉아 있는데 국자가 밑까지는 안 닿고 국물에 둥둥 뜨는 비계 서너저름만... 아마 열명중 한명

비개 고기 한 점이 배식 받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식당엔 조용하다. 돼지고깃 국이라 맛있게 먹는 모양인데 죄다 돼지 목간한 국물만 먹고 있으니,,, 한심할... 

국자가 국통에 반 빡에 안 내려가는데 어쩔기야. 그렇다고 국통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이제 방우들 퇴근 시간이 임박해 온다 . 그냥 마구잡이로 막 부려서 일을 마춰야 한다,  퇴근 할려는 방우들 막 몰

쳤다. 정말 그 넘들은 인간처럼 보이질 않았다. 왜냐고,,, 전쟁나도 실탄도 못쏘고 인민군에게 맞아 죽을 넘들같기에...

방우 퇴근하면 내가 젤 쫄따구인데--- 아니 나 혼자 조ㅈ나게 고생하니까...워커 발로 막 조까며 부려야 한다.

 

이제 국통 청소를 시킬려 보니 돼지고기가 바닥에 그대로 깔려 있더라. 이거 버리긴 아깝고 처리는 해야 되겠는데...

야!!! 방우들아--  비닐 봉지 하나씩 구해와 하고 머리 좀 썼다고 큰 소리치니 이 방우 새끼들 벌써 다 알고 있어...

그넘들,,, 야전 점퍼 안에서 푸대자루만한 비닐 봉지들을 꺼내더군---

그넘들,,,아마 내가 이 살코기를 몽땅 짬밥통에 넣어 버려두 떠 갈 모양이다.

결론은 방우 다섯명이 돼지 반 마리 도리한 거다. 돼지고기 4백명분인데 다섯이 나누어 먹으면---- 그것도 제일

없는 방우새끼들이...

 

기왕지사 방우들아 위병소 나가다 걸리면 취사장에 이 피투성이 고병장( 사실은 일병인데)가 가지고 가라고 다고

기해라-- 위병소 현병들 일반 병들이 겁네지만--- 주방장 앞에서 까불면 흔병 말들어 줄기니.. 꼼작 모하지...

지놈들 핸병이지만 취사장은 민생(고) 대통령인데 어델 까부노....

 

난 이러고 싶지는 않타.

말똥하나 마누라에게 내내 하고 고추가루뿐 아니라 간도 빼내줘야 하는 취사병 말이다. 난 좀 고지식해서 그리

쉽게 줄 사람도 아니지만,, 아마 함정을 놓고서 긍극적으론 내가 다칠것 같기도 허구,,,

나도 남과 똑같은 3년의 시간을 군대서 소비해야 된다면 이래 머리 아프고도 양심 상하는 이런 곳은 싫타.

어차피 보내야 할 시간이라면 남아답게, 식씩하게, 정의롭게,,보냐야 무어라도 내게 남을게 아닌가??

전쟁과 군은 무엇이며 나에게 남겨질건 무얼일까??

3년간 짭밥장 노릇하다 성미 다 버릴랴.... 남아로 뛰고 싶다... 소총도 쏘고,,, 인민군들 만나면 갈겨 버리고...

그래서 어느날 밤 따블백에 소총들고 소대로 다시 돌아와서 보고 하였다. 아파서 못 있겠다고... 

 

군대 이야긴 3년 해두 끝이 안 난다는데...

기왕 취사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난 소대생활중 연대 쌀 수령 당번이 매번 형님 사역 가요 하고 이야기 하면 중대에 사역보고 하고 그의 M60 트럭에

오른다. 부식을 타러 병참에 들어갔는데 오늘 부식은 가장 좋은 반찬으로 튀김이 되는 통닭이 나온다.

50년 건군때나 지금이나 섭취 칼로리는 변한게 없다. 그래서 육군 개인 섭취 칼로리량도 건군이래 한번도 변한게

없다 한다. 그럼 오늘의 부식으로 통닭 한마리는 육군 기준으로 8명이 정량이다.

 

그런데 통닭 부식을 싣고 각 전방 대대마다 취사장에 떨구고 다녀야 하는데...

어느 다리 하나 건너는데 검문소 보초왈,, 오늘 울 선임하사 생신인데... 지깐넘으 생신은 무슨 생일이지...

할 수 있나 그래 하고 그 부식병이 손까락을 뒤로 하나 올라가서 한마리만 가져 가라는 뜻인데... 그넘 총이고 실탄

이고 팽계치더니 트럭 뒤를 얼른 올라서 한마리만 내렸슬까?? 슬쩍 두서너 마리를...

 

그런데 가는곳 검문소마다 고참이나 선임하사 생일 파티를 한다냐??

아하,,, 부식날 좋은날 그들이 태어 났으니 먹을 복이 있어 행운아로군... 그래 이것도 립 써비스 아닐까??

그리고 연대 들어와 연대 병력엔 통닭이란 부식이 아예 없었다.

 

-----< 그럼 한신 장군님의 일화 한토막 >--------

 

 한신 장군님은 어느날 이등병 옷으로 갈아입고 식기를 옆에 차고 식당에 줄을 서서 식기를 내밀고 밥을 타는데,,,,

한신 이등병은 밥이 좀 작습니다. 좀 더 주십시요 하고 배식 주방장에게 말하니 그 취사병왈 !

없어 새끼야 !  하며 한신 이등병의 따귀를 때렸답니다.

 

할수있나..사령관님 별 계급장이 아니라 작댕기 하나의 이등병 계급장을 달았으니.. 쫄병이 따귀 한대 맞기로서니...

이때 부관 나으리께서는 아하... 오늘 또 죽었구나. 어이구 이 친구덜,,, 하고 속상한 눈치가. 식사시간이 끝나니

아나나 다를까,  한신 사단장께선 모든 장병들은 바로 연병장에 집합하랍신다.

이제 네눔들 죽었지,,, 요너무 사끼들,,, 똥 오줌 질질 싸 보래이... 하고 부관은 골아픈 심정이었다. 

 

조그만 체구의 한신 장군께선 부관을 대동하여 사열대에 오르시더니..

모든 장병은 쉬쉬 소문만,,. 그런데 부관은 전부 알고 있으니 사단장님 첫 마디가 무어라 말씀 하실까 하며   그 부

관은 바르르 떠는데...

한신 장군께선 무릎을 꿇고 하시는 말씀이 여러분 이 모든 책임의 저 사단장에게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병사가

고파 굶주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신 장군님의 FM은 다른 것 아니다.

그저 병사들에게 먹일것 제대로 먹이고. 재울것 제대로 제우고, 입힐것 제대로 입히고. 교육 시킬것 제대로 시키고,

휴가 보낼것 제대로 보내면 그게 한신장군의 FM 이다.

 

한신장군님 다음시간에 뵙갰습니다.

 

필 승 !!! 아니다 -----멸공의 횃불 국군 25사단 구호...초전박살!!!

고참들 왈~~ 군대 3년 초전박살 인사 수십만번 해야 제대를 하니 아마 꿈에도 "초박" 하고 떠들 것인데... 

사회 나가걸랑 여자들 보면 초전박살 내라는 거라.. 틀린 말은 아니겠지??

 여자들 보면 절도있게 인사 하라는... 무 ㅓ ㄹㄹ,,,

 

평창 중,고등학교 제22,25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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