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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백작네 헛간

육영수 여사님을 추모하면서,

 

8월 15일

  이 날은 우리 역사에서 잊혀지지않는 날로 기억된다.

 

  1945년 7월 26일 미·영·중은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였다.

일본이 이를 묵살하자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

하하였고,14일 가까스로 ‘포츠담선언’수락을 통고하고,15일 일본왕은 이것을 국민

에게 방송하였다. 30일 미군은 일본 본토를 점령하였고, 9월 2일 도쿄만의 미주리

호(號)에서 항복문서가 조인되면서 태평양전쟁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그후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들어오고 9월 9일 미군이 일본 총독부( 현 중앙청 )

제일 회의에 미군의 하지 준장과 일본의 아베 총독이 항복문서에 싸인을 하였습

니다. 그리고 중앙청 울타리에 둘러싸인 군중앞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랐습니다.

 

  이 광경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우리 조선의 독립투사와 삼천만 모든 국민이 꿈에

그리던 해방과 자주 독립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또한, 8월 15일 , 이날은 조국 광복의 날이기도 하지만,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37

년전인 74년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재동포 문세광이

대통령 암살을 노리다 여사를시해 하였던 역사적 아픔의 날이다.

 

  당시 수술시에서 간호를 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이애주(65·사진) 의원의 뉴스기사

에서 육영수 사의 이야기를 스크랩하여 간추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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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 여사는 그날 오전 10시23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저

격범 문세광총탄에 맞았다. 원남동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게 9분 만인

10시32분. 응급 조치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깎는 데 20여 분이 걸렸다. 수

오후 4시20분까지 5시간 넘게 이어졌다.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글쎄…”라며 육 여사의 베치코트 얘기를 먼저

꺼냈다.

한복치마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종의 속치마가 베치코트다. 통상 한복을 맞출 때

꺼번에 만다. 하지만 육 여사는 단을 덧대 3단으로 재활용한 베치코트를 최후의

순간에 입고 있었다. 듬성듬성 꿰맨 손바느질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는 것이다.

  간호사 이애주는 육 여사가 저격된 날, 그의 곁에 있었다. 수술 현장을 지키다 육

여사를 회복옮기고 유품을 챙겼다.

이 의원이 서울대병원 VIP 병실의 풍경을 회고했다.
 

-육 여사는 그 후 어디로 모셨나.
  “대통령이 떠나고 조금 후 노을 때문인지 하늘이 새빨개졌다. 정확하겐 보랏빛이

강한 빨간색이었다. 그때 직원들이 모두 육 여사가 돌아가셨다고 느꼈는데 정말 그

랬다. 그때까진 인공호으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곧 임종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7시30분쯤 청와대로 옮겼다.”


 “특실에 오는 분은 예외 없이 예외를 원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병원 규칙을 가장

지키지 않는 들이다. 아프지도 않은데 입원해 하루 종일 사람 만나고 물건이라면

모두 외제품이고…. 나는 박정희 대통령 때 야당 의원은 민주주의 화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 생활하면서 환상이 많이 깨졌다. VIP가 입원하면 통상 우리 직원들이

알아서 예외감수한다. 그래도 힘든 일은 넘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애기 울음 소리 녹음하려고 병실에 녹음기를 켜 놨는데 간호사

가 몰랐던 모양이다. 간호사가 ‘아기만 국산이네’라고 중얼거린 말이 녹음돼 난리가

벌어졌다. 어떤 장관님은 병원에 에어컨 고장 났다고 병원비를 깎으라고 호통치고…. 

박정희 대통령 때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 중 쓰러져 5년 반이나 입원한 VIP가 있었다.

우리는 의식불명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TV에서 박 대통령 뉴스가 나오자 눈물을 주

르르 흘리더라. 아주 인상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평소 301호실을 이용했나.
  “입원한 적은 없지만 79년 10월 초 입원 계획이 있었다.  안과 수술이 예정돼 내가

동대문시장침대시트·치약·칫솔 등 병실 비품을 사러 다녔다. 국산품이 아니면

대통령께 야단맞기 때문이었다.

1m65㎝ 체구에 맞춰 국산 가운과 슬리퍼를 장만했다. 하지만 부마사태 등으로 입

이 연기되더니 10월 15일 입원한다고 다시 통보가 오고, 이어 10·26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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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현 국회의원인 이애주 의원님의 당시 회고 뉴스 기사임

 

이 뉴스를 접하며 인상적인것은 육 여사님이 손수 기워 입은 베치코트에서 실감이

간다.
박 대통령의  이야기 중엔 통금이 지난 시간에 종로 5가쯤 김학렬 경제 부총리 집을

가끔 찾아 경제에 모르는 부분을 설명듣곤 하였답니다.이때 쓰루( 김부총이의 별명

으로 목이 길어 학이란 일본어) 마주 앉아 받아 적는 박 대통령의 어깨너머 런닝셔

츠가 삭아서 헤진것을 보며  그때마다 일국의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할수 있슬까 하

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회고 하였답니다.                            

 

  나로서는 이 이여기를 읽으며 참으로 이상한 생각은 아마 그 시각에 나는 시골 중

산층의 자녀로 초교생쯤이엇는데 빵꾸가 한방울이라도 난 런닝셔츠는 입어보질 않

았는데. 대통령께서 이토록 검소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때 당시 어려운 친구들은 각개런닝 하나에 책보를 엑스로 등에 메고 다닌 친

구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께서 이토록 검소할까 하는 의문이...

 

  대통령께서 이래 검소하지만 이런것을 검소란 단어를 사용할수 있슬까??  나의

머리는 혼돈스럽지만 이러한 점들이 박 대통령으로선 모두 검소함이라는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는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그 뿐만 아니라 8월 16일 청와대 빈소엔 대통령은 눈물을 매단 채 말을 이었다는데...

" 언젠가 한센병 환자를 방문했슬때 저 사람은 일일이 악수를 하더군, 그 뭉개진 손을

꼭 쥐어 내게 건네주기도 했지. 그래서 나도 선뜻 그 손을 잡았어, "" 하는 이야기가

대통령 입에서 스스로 전해질때 그 이야기는 우리의 심금을 더욱 울린다.

 

 그렇다. 육 여사님은 국모로서 모든이의 어머니이기에 한센스병 환자들에게도 진정

한 마음으로 손을 잡으셨을 것이다.

님은 아르헨티나의 에비타에 비견되고 오히려 능가하는 점은 사심없이 열정적으로

모든 이의 아픈 마음을 돌보시고 같이 아파 하셨던 점 입니다.

 

또한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한 육영 사업과 소외되는 계층을 위해 누구보다도 먼저 솔

선수범으로 그들을 껴안아 주시던 따스한 마음과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의 육여사님

은 청와대속의 야당이란 말도 있던데, 그에게는 지금까지도 여나 야의 이중적인 수식

어는 따라 붙지 않는다.

 

  님은 가셨어도 언제나 아련한 추억속에 언제나 한결같은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 따

스한 마음의 손길이 모든 이의 가슴을 여미곤 한다.

  님의 향기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추앙하고 앞으로도 먼 시공을 넘어 우

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 님의 서거 37주기를 맞이하여 이런 생각을 하며 추모 드립니다.

 

이 노래는 육 여사님이 생전에 즐겨 들으시던 곡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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