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67) 썸네일형 리스트형 < 평창경찰서 5층석탑의 글에서 아래 사진에 대한 답> 아래 사진속 인물은 故, 김종환 氏의 중학교 시절의 사진입니다. 그러면 ‘69~’70년 사진으로 당시로서는 파출소는 시장쪽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고, 또한 경찰서(구 일신중학 자리)가 옆의 2층의 신 사옥으로 이전되며 그 자리는 야학이 들어서게 되었고 후일 일신중학이 개교하게 되었다. 2층 경찰서 준공 시기는 대략 ‘64~5년도 쯤으로 ‘65년 국군장병 파월 이전쯤으로 보입니다. 당시 라듸오엔 연일 파월 군가가 나오던 시절을 회상하시면 그 이전에 2층 경찰서가 있었다고 얼른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일신 중학 개교는 아마도‘68~9년도 쯤으로 당시 경무대는 경찰서 자리는 다년간 비어 있어서 그 앞의 운동장과 같이 동네 놀이터가 된 적이 있으며 일신중.. 코로라의 종식은?? 조은 이야기 잘 읽었다. 나도 중화항체 맹그는 면역세포를 보유하는지 몰라도 백신 맞기엔 부담이 더 클듯해서 고민. 면역세포 보유나 백신만으로는 코로라의 팬데믹(유행)은 멈추지만 완전히 끝나지는 않을거란 계산이.. 옛날엔 국정 전염병에 많은 사람 죽인 인터내셔널 베니어리얼 디지즈(VD= 국제매독)과 콜레라, 장티프스등이 1급 국정전염병이었지만 매독은 페니실린 606이 정복했고, 코로라, 장티프스는 균은 있지만 걸리지도 않아 무력한 존재이다. 이렇듯 언젠가는 코로라도 종말을 갖겠지만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는 아닌듯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60%가 천연항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아마도 김치의 젖산균 작용일듯도 하지만 40% 때문에 사회 통제나 90%의 경우나 똑같은 무리수를 두어야 된다. 전 글에 얘기한 .. 평창경찰서 탑의 분석과 그 이해 평창경찰서 탑의 분석과 그 이해 2021-01-17 03:35 2010. 1. 10. 후세백작 평창의 향토사학자 정원대는 지난 가을「평창의 인문지리」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그 내용중에 ‘노암(魯菴)석탑 ‘편에서 동 탑은 평창경찰서 5층 탑이고, 원래는“동북오층석탑”이라 한다. 그러나 이 글은 단연 오류이고 왜곡도 가진다. 그러기에 픽션(허구)의 기록이 평창역사가 되는 점에대해서는 단호하게 엄정한다. ◀조선고적도보에 기록된 평창의 동북오중(五重)석탑 (조선고적도보는 일인 건축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1910년대 이후 한국의 고적을 답사 촬영한 것으로 동북오중.. 평창의 수변데크 길 레인보우 평창 2020년 9월 1일 낯선 여행자의 시선으로 평창읍에 말 걸기 낯선 여행자의 시선으로 평창읍에 말 걸기 “높은 산이 이렇게 많은 고장인데 평평할 평(平), 평창이라 부르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평창터미널 앞 둔치에 주차를 하는데 동행한 P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고구려 땅일 땐 우오(于烏)현이라 불렀다는데, 그 이름이 ‘까마귀’와 연관이 있는지, 감탄사의 음차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통일신라에 이르러 고개, 산봉우리, 산맥을 뜻하는 영(嶺)현이라 부른 건 그럴 듯했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지 23년째 되던 해(940년), 평창은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온 이름이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이 남산의 옆구리를 툭 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종부교 건너 ‘남산둘.. 정원대의 평창 인문지리 책의 해부 정원대 20.12.20 08:42 고맙습니다 3가지 항목을 질문하겠습니다 1)군민신문에 발표한 사명당 한자를 다시보시고 2). 이동우병을 이등우병 이라고 하는 자료 3) 석탑의 뜻을 알고 있는지요. . 안상이 만상이 되고 사재산에 흰진흙,물 등이 있다는 등 제가 쓰지도 않은 글이 있어 어떻게 하여야 할지 고민중에 있습니다 . 그리고 장... 교수님하고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하면서 2021년 지명지 등 도 차원에서 새롭게 연구한다고 합니다 . 그 때 한 구성원이 되어 평창의 역사를 명징하게 재 정비 보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적으로 평창문화원에서 2020-2021 까지 평창 읍면지를 보완작업을 하고 있는데 함께 하시어 새롭게 정비 보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정원대는 남의 오류는 꼬치꼬치 따진다, 이.. 수다사(水多寺) 지명의 어원의 의미 고찰 수다사(水多寺) 지명의 어원적 의미 고찰평창역사연구자 高 柱 浩월정사 아래로 흐르는 오대천에 따라 12km쯤 아래에 위치한 수항리사지는 절터를 둘러싸고 물이 굽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물[水]의 목[項]이라고 한글학회의 지명총람 2 (508쪽, 1967)에 서술되어 있다. 동 절터는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 143번지에 소재하는 강원도 기념물 제 49호의『평창 수항리사지(平昌 水項里寺址)』로 현재 일부 결손되고 두 기의 옥개석으로만 된 탑이 남아있다.이곳은 오랫동안 "수항리사지"의 절터로만 알려지다가 1983년 水多란 명문기와의 와편이 출토됨에 이곳이 수다사지임이 알게 되었고,, 또한 “태백곡 수다사”(太伯谷 水多寺)란 명문이 쓰여진 청동촛대를 발견함으로써 이곳이 수다사지임을 재확인하였다.삼국유사의 제 4권.. 평창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평창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2020. 12.5, 05;00 平昌歷史硏究者 高 柱 浩 지난 12월 3일 용평면사무소 2층 대회의장에서 “평창 율곡마을 역사정립 세미나”를 비대면으로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평창군, 평창군의회, 평창문화원, 평창교육지원청, 용평면번영회, 용평면이장협의회, 봉평농협이 후원하고, 평창군민신문사가 주관햐여 평창율곡마을가꾸기 추진위원회가 개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곳 판관대에서는 이미 세 번의 세미나가 발표되었고, 또한 평창군에서는 판관대 정비계획까지 만드는등 수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그것은 판관대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모두 신사임이 율곡을 잉태하였다는 잉태지 설화설을 주 모티브(모체)로 전제하였기에 판관대의 역사적 소명에 제역.. 잉태지의 단어적 이해 잉태지의 단어적 이해 2020. 12.5, 05;00 平昌歷史硏究者 高 柱 浩 (1) 율곡의 사패지에 관해서 앞으로의 연구방향 이곳 판관대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을 잉태한 곳으로 알려지자 현종은 사방 5리의 사패지를 하사하였다.(1655년, 임인년). 이러한 기록에 의하여 평창군민신문은 백옥포리 212번지외 123개 번지에 1916년 일제식민시대에 토지조사부 정보공개 신청하여 밝혀진 바 총 50,830평의 토지가 당시 강릉군 정동면 죽헌리 (현 오죽현)의 권영달씨 소유로 밝혀졌다. 이는 "이씨 분재기"에 신사임당의 어머니 용인 이씨는 율곡 이이에게는 제사를 지내는 봉사조로 재산을 분배하였으며, 대릴사위인 넷째딸의 부군 권화의 아들 권처균에게는 오죽헌에 벌초를 하는 배사조로 오죽현을 물려었고 이후 오죽헌은.. 친구들, 우리도 투사가 되어 일본함 갈래 ... .헤이,,, 칭구들.. 우리도 투사가 되어 일본 함 갈래. 우리 일본 한번 갈래.. 우리나라가 말이다 엘본에 대해서 과거 역사 바로세우기도 좋치만 문제는 지금이 더 중요하다. 그건 우리시대에 일본에서 받는 피해의 잔재를 먼 후손에게 물려주지는 않아야 된다는 의미일세, 그 중 하나의 큰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는 문제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란 바다에서 화산에 의해 쓰나미가 일자 발전이 멈추어 원자로에 전원 공급 중단되어 냉각시스템은 마비되어 핵 연료봉이 대기중으로 노출되어 고온이 되어 900°C에서 산소에 의해 수소 폭발이 일어났고 여기에서 방사능이 만들어지며 수증기에 포함되어 분출되었다. 이떼 전원 공급이 중단되자 공중에서 물을 투하하라는 미국측의 권고사항이 있었지만 4조엔의 원자력 .. 율곡의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서 이제 논문 2편을 재 탈고하여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세미나는 12월 3일 열립니다. 본 군에서는 만류하였으나 이제 계속적 지원아래 율곡의 문화는 탄생하게 됩니다. 2 평창에서 그간 학자들에 의해 판관대 세미나는 3번정도 열렸는데 전부다 바른 이해로 다가서지는 못했고 또한 평창의 주장을 펼치지도 못했습니다. 세미나는 일반적인 이야기들만 치중하지 10년설이나 4년설이 잘못 논고된 점이나 서울대 교수들이나 여러 학자들 모두 조운에 대해 깊이 알지도 못하고 남의 것만 베께 관서를 대동강이라만 하는 학문적 오류들,, 이런 오류들에 휩쓸린 판관대의 입지적 재 소명등은 일반 학자들이 주창하는 예는 없엇습니다. 그렇다고 평창에 향토사학자들도 전무하여 부득이 필자로서는 이에 연구를 하고 가장 평창.. 평창의 임진왜란사 이해 ◆ 기천록과 호구록의 차이점 문제 기천록에서는 호구록보다 정확도는 떨어지나 자세한 점은 원주 강원감영에서 탈출시 설명으로 고종원, 종경 형재는 새벽에 포승줄을 이빨로 잡아뜯어 끊고 탈출을 하고자 하니 권군수도 포승줄을 풀어달라고 애원해서 풀어 주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상부의 명이지만 동생 종경을 사형시킨 당사자이지만 그 보다 탈출은 생사를 건 모험으로 탈출에 대한 사전 약속도 없이 포승줄을 물어뜯은 일에 종원 형제는 두 사람만이 빠져 나오려 했는데 권군수와 그의 아들의 포승줄도 풀어주자 (여기까지는 기천록) 이때 힘이 좋은 권군수 아들 주는 벽을 헐고 탈출하개 된다(호구록) ◆ 조선침략에 나선 왜구 4번대 구성원은?? 일본군 4군(4번대)의 총대장 모리 야스나리(毛利吉成)는 도꾸가와 이에야스(풍신수길)의.. 평창 돌 체험관의 사색 평창 돌 체험관의 사색 평창에는 박물관이 두 개가 생겼다. 그 하나는 오대산에 오대산사고 박물관으로 일제가 오대산사고에 보관대되어 있던 이조실록을 밀 반출해가서 관동대지진에 불타 없어지고 학자들이 대여해갔던 40여권의 실록이 반환되어 규장각에 보관중이며 원 제자리인 오대산 사고에는 오대산 사고 박물관을 짓고 환수되어온 원본이 아니라 이미테이션의 복사본을 영인본이라 하며 가짜를 보관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것은 원본이 없다면 몰라도 원본을 프린트한 복사본을 보관하려고 국가 예산 70억을 들여서 오대산에 사고를 지었다. 또 하나의 박물관은 올해 3월에 개장한 평창읍 중리의 돌체험관은 명칭은 체험이지만 그곳에서 돌에 관해 할 수 있는것은 눈으로 감상하는 수석 박물관이다. 수석박물관이라 하면 어감이 좀 이상.. 세미나 논문 후기 1, 판관대 비석의 명문에서 (1) 비석의 명문 해석 "율곡선생의 어머님 행장에도 봉평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보이거니와 강릉땅에서 지내던 신사당이 용을 현몽하고 서기1536년 음력 2월에 이곳으로 옮겼고 서울에서 수운판관직에 있던 부 군 이원수공이 말미를 얻어 이곳으로 귀가하니 그때에 율곡선생을 잉태한 것으로 전해온다" ◈ 봉평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보이거니와 강릉땅에서 지내던 신 사임당이 용을 현몽하고 서기1536년 음력 2월에 이곳으로 옮겼고 라는 기록에서, ~ 이 보이거니와라고 표현하는것은 그 다음 문장엔 그런 행장의 기록이 아닌, 지금까지의 기록은 특히 율곡이 쓴 선비행장의 기록도 전혀 무시하겠다는 의도형 문장으로 그 다음 글들은 역사적 기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란 입장을 취하는 느낌이다. ◈ 또한... "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세미나는 코로라로 인하여 연기 되었습니다. 이번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세미나는 박사님과 향토사가의 총 5명의 주제 발표로 계획되었습니다만 이번 코로라 사태 2단계로 인하여 연기되었습니다. 본인의 논문은 약 60여 페이지 분량으로 율곡과 신사임당의 백옥포리 판관대의 생활과 저변의 이해에 대한 과제로 오죽헌의 영역과 판관대의 영역이 구분되는 논제로 한평생 서울대 교수에서 규장각 관장까지 역임한 자가 백옥포리 집은 강릉에서 서울을 다니기에 힘들어 신사임당의 어머니 용인 이씨가 그 중간에 지어준 별서라는등 웃기지도 않는 놀리들이 난무하기에 백옥포리 판관대에 대한 기준적 정ㅇ의의 글로 이번 세미나 자료집에는 후기로 별첨하며 13페이지로 새로 구성한 논문으로 판관대 부분만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본인의 판관대의 역사적 사실의 실체를.. 월정사를 사랑한 유정 사명당 월정사를 사랑한 유정 사명당平昌歷史硏究家 高 柱 浩 조선 중기에 청허 휴정(서산대사. 1520∼1604)은 오대산에 주석하였으며, 그 문도들이 대거 월정사 및 오대산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휴정의 제자 사명당은 왜구들을 이기는 많은 설화 이야기가 전해지고 전국 각지의 사찰이 사명당의 업적을 기리고 있지만 정작 사명당이 임란 후 국서를 가지고 일본을 건너가 강화조약을 맺고 돌아와서 국가의 위상인 실록을 보존하기 위해 오대산 영감난야에 오대산 사고를 지은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유정 사명당은 경남 밀양 생으로 1544(중종 39)에 태어나 1610년(광해군 2년)에 입적했다. 법명인 유정보다 당호인 사명당(四溟堂)으로 더 유명하고, 존경의 뜻을 담아 사명대사(四溟大師)라고도 부른다. 사명 유정(.. 수다사(水多寺) 지명의 기록과 어원적 의미의 고찰 수다사(水多寺) 지명의 기록과 어원적 의미의 고찰 평창역사연구자 高 柱 浩 월정사 아래에 수항천을 따라 내려가면 12km지점에 위치한 수항리사지는 절터를 둘러싸고 수항천이 굽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물[水]의 목[項]이라고 한글학회 지명총람 2 (508쪽, 1967)에 서술되어 있다. 동 절터는 현재 두 기의 옥개석으로 결손된 탑만 남아있는 사원지로 강원도 기념물 제 49호의 평창 수항리사지(平昌 水項里寺址)로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에 수항천변에 소재해 있다. 수항리사지는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 143번지에 위치하는 폐사지로 오랫동안 "수항리사지" 절터로만 알려지다가 1983년 명문기와에서 水多란 명문 기와가 출토됨에 이곳이 수다사지임이 밝혀지며, 또한 “태백곡 수다사”(太伯谷 水多寺)란 명문이 쓰여진 청동.. 困 惑 !!!!!!!! 困 惑 !!!!!!!!!!!!!! 20.03.31. 23:32 당(정당)이 무궁화 뺏지 꿔주고 빌려주고.. 그래서 선관위 돈 더 타먹구,,잘한다. 의원 나리님들이 만든법에 지넘들이 춤추고, 선거철이라 궁민은 입틀어막고 지넘들 맴대로들... 이게 나라인가 법인가.. 똥이라 하지. 왜 똥이냐고.. 선관위 선거 보조금 가만 있어도 다 지넘들 것인디.. 괜스레 잘난 법 만들어서 이상한 구호 외치는 당들에게 똥가루 다 덜구고서 뭘로서 똥냄새를 풍길까?? 예산을 절감하여 궁민들에게 평생 현찰을 준다 하는데.. 볼세비키도 아니고 돈세비키인가?? 긋도 얘기는 얘기인지라 자꾸 뇌리속을 스친다. 여의도 국회 건물은 거대한 화장실. 중앙 돔 위에 환풍 퓐 설치한다면. 개인이 떠들어도 뉴스가 되는 빨강벌레 씨.. 새로 써야하는 평창의 상고사 (석기,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 새로 써야하는 평창의 상고사 (석기,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 후세백작 평창 역사에서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평창의 상고사에 대해서 관내의 사료집 책자들에는 30여개의 고인돌과 임하리의 선돌, 그리고 주진강등에서 일부 선사 유물의 채집등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을 서술하고 있으나, 2,010년대 이후에 고고학계에 의해 새로 밝혀지는 평창의 상고시대(석기시대, 청동기및 철기시대)의 역사 유구와 유적 발굴에 의해 평창의 상고사는 당연히 수정되어야 하는바, 이러한 작업은 역사학회나 관의 주도하에 공적인 입장으로 발표하여야 하는 과제이며 그에 따라 평창의 역사서들에 새로 개정된 일관된 역사가 수록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평창은 세미나는 자주하고 있으나 세미나에는 향토적 색채에 대한 외부 학자들이 논지에.. 평창 하리 240-4번지 유적(평창 하리 청동기 유적 조사, 발굴 보고서)원본게시글 평창 하리 240-4번지 유적(평창 하리 청동기 유적 조사, 발굴 보고서) 후세백작 ( 이 게시글은 문화재청의 자료 열람에 의해 강원고고문화원구원의 "평창 하리 240-4번지 유적.pdf" 조사 연구 리포트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Ⅰ. 조사개요 1, 조사경위 평창읍 하리(240-4, 240-12번지)일원에서 1986년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문화재 조사에서 마제석촉이 수습되어 평창읍 하리 유물 산포지로 수습된바 있으며, 2004년 문화유적 분포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지표조사중 무문토기편이 수습되어 선사시대 유적이 입지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건축주 지해영씨는 본 지역에 단독주택 신축허가를 평창군에 신청하였으나 동 지역은 상기한 바와 같이"평창읍 하리 유물 산포지"*㈜에 해당하는 이유로 .. 다시 서술하는 미탄 "육백마지기" 어원의 재고찰 미탄 "육백마지기" 어원의 재고찰 http://blog.daum.net/kkks1/1681 후세백작 세금을 계산하기 위하여 사용한 농토의 넓이단위 마지기(斗落)이 아니라 結,卜,束의 단위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세종 26년(1444)부터는 6등급으로 나누게 되었는데 인조 12년(1634)부터 1등전 1결의 넓이는 10,809㎡가 되었다가 대한제국 광무 6년(1902)부터는 1만㎡인 1㏊를 1결로 제정하였다. 1등에서 6등으로 갈수록 1결의 면적은 일정한 비율로 넓어진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시인 1910년부터 약 10여년간 우리나라 전 국토를 측량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지번의 이름이 그때부터 처음 매겨지는 것으로 단위의 넓이는 현대의 평, 정보(ha)등으로 매겨집니다. 그러기에 경작지 이조때 세금을 거두기 .. 평창 하리 유적에서 발굴된 고인골의 그녀는 누구일까??(평창 하리 청동가 유적 - 부록 2) 평창 하리 유적에서 발굴된 고인골의 그녀는 누구일까??(평창 하리 청동기 유적 - 부록 2) (이 글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픽션의 이야기로 사유적 사색의 가상치로 구성합니다) 2016년 강원 고고 연구원에 의해 평창읍 하리 240번지 일원의 석실묘 9호기중 2호분에서 古인골과 함께 매납되었던 비파형(고조선식) 청동검의 발굴되었다. 따라서 각 연구기관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바 하리 청동기 유적의 탄소 동위원소 시험결과 2,600년전의 유적, 유물로 판명되었다. 그것은 일전 게시글에 하리 출토의 청동검은 비파형의 곡선이 조금 완만해지고 봉부도 작아지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하부의 검엽이 조금 작아지는 비파형 청동검으로 날씬한 세형동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의 청동검으로 약 2,500여년전에 오차는 100년을.. 평창 하리 240-4번지 유적(평창 하리 청동기 유적 조사, 발굴 보고서) 평창 하리 240-4번지 유적(평창 하리 청동기 유적 조사, 발굴 보고서) 아래의 『평창상고사』 게시글을 사정상 본인의 임의로 삭제합니다. 하지만, 본 게시글은 아무런 문제나 제약을 받지 않기에 후일 원문 그대로 다시금 평창의 상고사를 조명하겠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위 연구 보고서에는 평창읍 하리 청동기 유적이 방사성 탄소 측정 결과 탄소연대 (ytsBP) - 2620년에 오차범위-30년, 즉 연대범위는 (4호분 주변 검사 기준) (BP) 2590~2565 전으로 BC590~565년 사이의 역사임이 밝혀졌습니다. 하리 청동기 시대 석관묘 내에서는 국내 가장 오래된 피장자의 전신상 인골이 발굴 되었으며 인골과 함께 매납된 비파형 청동검에서 세형 동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비파형 청동검(일명 고조선식.. 새로 써야하는 평창의 상고사 (석기,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 새로 써야하는 평창의 상고사 (석기,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 평창 역사에서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평창의 상고사에 대해서 관내의 사료집 책자들에는 30여개의 고인돌과 임하리의 선돌, 그리고 주진강등에서 일부 선사 유물의 채집등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을 서술하고 있으나, 2,0.. 김삿갓은 죽어서도 세인들을 멀리 운둔하고 계신가?? 김삿갓은 죽어서도 세인들을 멀리 운둔하고 계신가??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蘭皐 김병연에 대한 영월의 김삿갓묘 전개과정의 이야기속에서 과연 무엇에 범실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고져 합니다. 김삿갓의 시는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파격성에 풍자와 해학으로 삐뚤어진 이 세상을 풍자하고 양반들의 기성의 권위에 대한 희롱조등에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기에 인터넷의 블로그나 카페등엔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에 무수히 많고 또한 김삿갓이 지은 詩가 아닌 논지를 지닌 詩임에도 유머와 해학이란 김삿갓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듯, 김삿갓의 詩세계로 끌려들어 둔갑되즌 것 또한 김삿갓의 유머와 풍자시의 독보적 세계란 위상을 나타낸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영월의 노루목의 김삿갓의 묘를 관람한 수 천명의 기행문엔 한결같이 김삿갓의 노.. 평창 후평리의 선돌백이 평창 후평리의 선돌백이 * 강원도민일보의 기사 내용이 글에서 후평리의 선돌백이는 옛 석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인공적인 선돌은 아닙니다. 따라서 정원대의 의문이나 강원일보 기사는 의미없는 이야기입니다.[강원도민일보 신현태 기자] 평창읍 후평리 노산 입구에 선돌로 추정되는 대형 바위가 발견돼 선돌여부를 확인하는 학술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자칭 평창지역 향토사학자 정원대와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평창읍 후평리 31호선 국도 옆 노산 자락에 위치한 이 선돌 추정 바위는 높이 10여m,폭 1.8m 크기로 국내에서 발견된 선돌 가운데는 상당히 큰 규모에 속한다.특히 이 바위가 위치한 마을은 주민들 사이에 선돌백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어 전국적으로 선돌이 있는 마을지명과 같아 주민들은 이 바위가 선.. 4. 평창읍 하리 청동기 유적에서...(2019를 돌아보는 사유적 사색에서) 4. 평창읍 하리 청동기 유적에서...(2019를 돌아보는 사유적 사색에서) 후세백작 2020.01.23 00:53 저의 모든 글이 그러하듯 하리 청동기 유적에 관해서는 4~5년전 당시에 몇 편의 글에 의해 역사적인 사안을 소상하게 언급하였으며, 이 장에서는 이러한 하리 청동기 유적(예를 들어 역사에서는 .. 3,평창의 바위공원과 백일홍 축제에 대한 사유적 사색 (평창 역사의 바른 정립에 관한 회고) 3, 평창의 바위공원과 백일홍 축제에 대한 사유적 사색 (평창역사의 바른 정립에 관한 회고) 후세백작 2020.01.09 평창의 레져문화에 훌륭한 것으로는 노람뜰의 바위공원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노르웨이엔 비겔란의 조각공원이 있지만 평창엔 그 순수한 자연의 세계의 바위공원이 있다. 이 .. 2. 노산성의 여러 현안문제 (평창 역사의 바른 정립에 관한 회고) 2. 노산성의 여러 현안문제 (평창 역사의 바른 정립에 관한 회고 ) 후세백작 2020.01.06 07:32 제 1장의 평창역사 정립에 관한 회고의 의의와 개괄적인 이야기에 이어서 제 2장 이하 3장등 계속하여 이미 발표한 평창역사의 새롭게 정립하는 각 개뱔 역사의 게시글들의 이래에 관한 보층 설명을 .. 판관대 세미나를 환영합니다 판관대 세미나를 환영합니다 후세백작 2019.11.03 22:19 오는 11월 22일 평창에서는 판관대의 문화콘텐츠 계발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한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심사임당과 율곡에 관하여 평창으로 이 문화 콘텐츠를 계발함은 고무적인 일로 환영합니다. 우션 죄송합니다만 "문화 콘.. 요즘 나의 생각은 기우[杞憂]일까?? 요즘 나의 생각은 기우(杞憂)일까?? 기우[杞憂]라 함은 옛날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급기야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는 얘기에서 유래합니다. 바뀐 뜻 지나친 걱정이나 쓸데없는 걱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 출전은 《열자(列子)》의 .. 이전 1 2 3 4 5 6 ··· 23 다음